[바티칸시티=외신종합]오는 10월로 교황 재위 25년을 앞두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5일부터 5일간 유럽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를 방문 해외사목방문 100번째를 기록했다.
이로써 교황은 재위 25년간 129개국을 방문했으며 교황청과 이탈리아를 제외한 해외에서만 570일을 보냈다. 1978년 10월에 교황직에 오른 요한 바오로 2세는 3개월 후인 1979년 1월 라틴 아메리카의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바하마스 순방으로 해외사목방문을 시작해 100번째인 크로아티아 방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일화와 놀랍고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해냈다.
교황은 1980년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를 방문 빈민가를 몸소 찾아가 그들의 가난을 안타까워하면서 끼고 있던 금반지를 내놓았으며 몇년 뒤 인도 캘커타를 방문해서는 마더 데레사와 나란히 빈민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998년 쿠바 방문 때는 수도 하바나의 혁명광장에서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한 미사에서 성서 구절을 인용해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줄 것을 촉구하는 등 독재자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말을 하곤 했다.
또 교황은 가는 곳마다 그 지역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멕시코 방문 때에는 커다란 챙의 멕시코 전통모자 솜브레로를 직접 쓰기도 했고 피지에서는 피지 전통주를 마셨으며 호주를 방문해서는 코알라를 직접 안아보기도 했다. 사진
교황은 또한 그의 언어 구사 능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해외사목방문에 앞서 몇주에 걸쳐 연습을 해 전례시 한두마디 정도는 반드시 방문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때때로 지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했다. 1986년 9월 아프리카 남부의 스와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4명의 아내를 둔 스와질랜드국왕 앞에서 아프리카의 일부다처제를 비난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9번에 걸친 교황의 폴란드 방문은 그때마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산정권 시절에는 교황의 차량 행렬이 지나갈 길에 깔린 꽃을 장갑차가 뭉개고 지나가기도 했으며 폴란드 신자들이 교황을 보기 위해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경찰들의 제지로 험악한 분위기가 촉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황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는 폴란드의 공산체제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오는 22일 101번째 해외사목방문으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방문을 계획하는 등 83세의 고령에도 해외사목방문을 멈추지 않는 교황의 열정은 그가 처음 해외사목방문을 앞두고 했던 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교황은 해외사목방문의 목적은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알고 그들을 껴안고 그들 모두에게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전하기 위한 것 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