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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해외순방 1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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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사도로서 소명 실천” 방문 지역 풍습과 전통 즐겨 공산권 붕괴 도화선 되기도 「행동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세계를 향한 순례의 여정은 끝이 없어 보인다. 교황의 잦은 해외 순방은 이미 1978년 교황 즉위 당시부터 예견됐다. 교황은 『세계화 시대의 교황으로서 각지를 최대한 직접 방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특히 분쟁 지역과 오지를 마다 않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평화의 사도」로서의 소명을 실천해왔다. 1980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빈민가를 걷던 교황의 모습은 전세계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다. 이때 교황은 가난의 비참에 충격을 받아 교황 반지를 빼 본당 신부에게 건네주었다. 몇 년 뒤 교황은 인도 캘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와 함께 서서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인도 국민들을 기쁘게 했다. 독재정권의 초대에도 기꺼이 응했다. 1998년 쿠바를 방문했을 때 교황은 하바나의 혁명 광장에서 미사를 거행하면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이라는 성서구절을 인용해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참석자들의 맨 앞에는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가 앉아 있었다. 서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를 방문했을 때 행렬 도중에 차를 세워 흙으로 만든 집에 들어가 보좌관이 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할 때까지 가난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태국의 사원에서는 부처상 앞에서 5분 동안 고승과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교황은 방문하는 지역의 풍습과 전통을 기꺼이 즐겼다. 멕시코에서는 차양이 넓은 전통 모자인 솜브레로를 썼고 피지에서는 코코넛 술을 맛보고 호주에서는 코알라를 안고 다니기도 했다. 현지어로 인사를 하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전통말을 공부하는 열성도 보였다. 미사가 시위로 중단되기도 했다.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들의 정치 구호를 압도하기 위해 성난 듯한 큰 소리로 강론을 했다. 1987년 칠레에서는 최루탄으로 고통을 받았다.
8차례의 고국 폴란드 방문은 국제 정세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해왔다. 냉전 당시 폴란드를 처음 방문했을 때 교황의 행렬을 위해 깔아놓은 꽃을 소련제 장갑차가 뭉개고 지나갔다. 하지만 폴란드는 교황을 정점으로 연대감을 형성 자유노조를 결성했고 이는 10년 뒤 동유럽 공산권 붕괴의 도화선이 됐다. 교황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마도 2000년 대희년의 성지 순례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를 순례한 교황은 이듬해에는 사도 바오로가 눈이 먼 다마스커스의 외곽을 찾았다. 교황이 아직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방문하기를 열렬히 소망하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다. 넓은 땅과 엄청난 인구의 중국을 빼고 새 천년대의 복음화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교황이 아직 방문하지 못한 몇 안되는 곳 중의 하나이다.
교황은 첫 번째 해외순방을 나서기 전 세계를 여행하는 목적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을 알고 그들을 포옹하며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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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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