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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몸이 부서지도록 사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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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후 한 수녀님의 꼬임(?)에 넘어가 한나절을 꼬박 걸었다.
“사순시기도 되고 해서 김범우 묘소에 다녀올까 하는데…”라는 말에 선뜻 따라 나선 것이다. 차를 타면 잠깐이지만 걸어서 가면 기도시간까지 합쳐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고행길이다.

봄날 오후의 도보 성지순례. 모처럼 봄기운 가득한 들길을 걷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길섶에서 새싹들이 새색시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오솔길을 걷노라니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라는 성가가 절로 흘러나왔다.

얼마나 좋았던지 동행하는 수녀님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우리 사순시기 성지순례하는 것 맞아?”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증거자 김범우(토마스) 묘소는 초행길이 아니다. 우리 마을 수도자들은 순교자성월이 돌아오면 둘씩 짝지어 한달 내내 릴레이 도보 성지순례를 한다. 순교자들의 신앙적 열정과 혼을 묵상하기에는 도보 성지순례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묘소는 작은 개울을 건너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나온다. 순교자들 앞에서 다리 아프고 숨찬 것도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숨을 헉헉거리면서 산등성이를 오르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순교자들에게 향한다. 그리고 묘소 앞 알림판 문구는 순례자를 220여년 전의 그 시절로 안내한다.

‘1751년 서울 명례방 태생 역관(譯官)이며 한의사로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명례방 집회도중 을사추조적발 사건으로 잡혀 밀양 단장으로 유배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형벌 여독으로 1787년 사망.’
참으로 위대한 죽음이다. 그 척박한 불모지에서 천주신앙의 싹을 틔운 것도 위대하고 유배지에서 병든 몸으로 복음을 증거한 것도 위대하다.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된 덕분에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의 순교를 묵상해 본다.

평화의 마을이 김범우 묘소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김범우 증거자께 작별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왔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평화의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날 따라 수녀원 옥상에 서 있는 예수성심상이 팔을 더 크게 벌리고 반겨주는 것 같았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당에 나와있던 꺾쇠 형제가 이산가족 상봉하듯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건넸다. ‘사랑의 순교’라는 것도 있다. 피 흘리는 순교는 못하더라도 가난한 우리 가족들에게 몸이 부서지도록 사랑을 쏟아야겠다.
**사목일기 다음 필자는 황명훈(전주교구 순창본당 쌍치공소) 평신도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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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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