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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우리들에게 기대어 실컷 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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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가족들은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아침기도를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후원회원과 은인들을 위한 묵주기도만큼은 거르는 법이 없다.
그런데 요즘 가족방에서 들려오는 기도소리가 무척 간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TV에서 연일 보도되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소식 때문이다.

“하느님 고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해 주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딸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부모의 고통이 우리 가족들에게는 남의 고통이 아니다. 때묻지 않은 천사같은 마음에서일까?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지금도 TV 뉴스에 유족들이 비춰지면 함께 흐느끼는 가족이 많다.
특히 하루종일 누워서 생활하는 손 골롬바 자매님의 기도와 슬픔이 애절하다. 골롬바 자매님은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것이 얼마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란 것을 잘 안다.

골롬바 자매님은 고등학생 시절 연탄가스에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 간밤에 “엄마 잘 자” “그래 너도 내일 학교 가려면 일찍 자야지”라는 인사를 주고받은 어머니가 다음날 아침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골롬바 자매님은 그 충격과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이 겹쳐 서기는커녕 앉아 있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눈도 어두워졌다. 아버지도 후유증 때문에 정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장애인이 된 딸의 손을 잡고 우리 마을에 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死別)은 언제나 슬프다. 특히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남들처럼 병석에서 앓기라도 하다 떠났으면 이렇게 원통하지는 않겠다”면서 통한의 눈물을 쏟는다. 그런 애절한 절규는 너무도 당연한 감정이고 슬퍼할 수 있을 만큼 슬퍼해야 한다.

단 누군가 곁에서 그 슬픔을 받아주어야 한다. 슬픔을 가슴에 묻어두지 않고 온전히 밖으로 퍼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그 사람이 하루라도 빨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럽게 우는 사람을 가슴에 끌어안고 말없이 다독여주는 것만큼 고귀한 봉사도 드물 것이다.
골롬바 자매님은 우리 마을에 와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말도 하고 눈도 밝아졌다. 같은 방 식구들과 수녀님들이 곁에서 슬픔을 나누면서 사랑으로 다독여주었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알게 된 골롬바 자매님은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골롬바 자매님은 마음으로나마 유족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 가족들의 기도와 사랑이 유족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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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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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7장 2절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고난의 빵을 먹음도 너희에게 헛되리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잘 때에 그만큼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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