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사랑 1. 김여원 82세 베드로 지난 4년 동안 신구약 성서 전체를 한글 일본어 영어로 필사. 현재 한글 성서 다시 필사 중.
▲성서 사랑 2. 장현준 14세 라우렌시오 지난해 말 구약성서의 잠언을 영역 필사.
서울대교구 월계동본당(주임 하형민 신부) 김여원 할아버지와 장현준군의 나이차는 68년. 대선 이후 세대간의 인식차가 새로운 사회 갈등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지만 적어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세대를 뛰어넘는 성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한글 성서와 일본어 성서 영어 성서를 갖고 있다. 1999년 한글 성서를 완필한 후 이듬해부터 영어와 일본어 성서 필사에 잇달아 도전 지난해 말 그 긴 여정을 마쳤다. 260쪽 대학노트 30여권 분량. 매일 하루 5시간 이상 쉬지 않고 성서 필사에 매달린 땀의 결실이다.
“일본 상지대를 다니다가 징용으로 끌려 가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해방 후에는 이북에서 월남해 오랜 기간 교사로 생활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배운 일본어와 영어가 하느님의 말씀을 필사하는 데 사용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년 전인 63세 때 세례를 받은 김 할아버지는 요즘 다시 한글 성서 필사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 조금씩 성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손을 놓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지금도 김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1~2시간 동안 성서를 필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현재 ‘이사야서’까지 필사를 마친 상태.
김 할아버지가 이룩한 업적(?)에 비하면 장군의 그것은 보잘것없지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어른들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 성서를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일궈낸 것이다. 비록 문법의 정확성 부분은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직접 인명사전과 한영사전을 뒤져가며 밤을 샌 노력이 가상하다.
“영역을 하다 보니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성서 구절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복사단 생활 3년째.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 성직자 혹은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 군은 잠언을 영역하면서 삶의 지혜를 많이 얻었다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영역 성서를 펼쳐 보였다.
지난 4년 동안 성서 속에 파묻혀 살아온 김 할아버지가 내린 결론. “은총과 자비입니다. 성서를 손으로 옮겨 쓰면서 남은 것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필사를 하면서 성서에서 특별한 지식을 얻을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서에 깃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옆에서 장 군이 김 할아버지 말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