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배의 부림을 받는 어린이가 구걸이나 도둑질 따위로 돈을 버는 짓 또는 그 어린이를 두고 앵벌이 라고 한다. 그런데 가끔씩 나는 신자들에게 이런 앵벌이 짓(?) 을 시키는 두목 이라는 생각이 든다.
3주전 이 칼럼에서 나는 우리 성당이 신설 성당임을 얘기했었고 성전을 신축하고 있음을 말했었다. 이처럼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신자들의 품팔기 다.
즉 건축헌금을 내는 것으로도 애를 쓰지만 소위 자신의 품을 파는 것 으로 성전 건축에 힘을 대는 것이다.
우리 본당의 경우는 여성구역회를 중심으로 이런 품팔이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성구역회의 구역장들과 반장들 또 각 구역의 반원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수없이 많은 품을 팔았다.
그 중에 가장 큰 품은 뭐니뭐니 해도 물건 파는 품이었다. 그간 안 팔아 본 품목이 없을 만큼- 여자 스타킹에서 남자 양복까지 온갖 먹거리는 거의 다- 우리가 취급한 것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렇듯 자신들을 기꺼이 내어준 우리 신자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저며올 정도로 미안한 때도 있었다. 작년 거의 이맘 때에 우리 성당이 속한 구청 마당에서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렸었다. 나는 그저 돈에 눈이 어두워(?) 여성구역회에 그곳에 가서 장사할 것을 권유했다(사실은 명령한 것).
우리 신자들은 그저 본당신부의 철썩 같은 약속(수월하게 잘 될 것이라는)을 믿고 성당 밖에서의 장사 를 감행하였다. 그러나 날씨마저도 쌀쌀했던 그 날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준비해간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어 하였다. 다행히도 저녁 늦게까지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는 하였지만 그 날은 우리에게 아주 끔찍한 하루였다.
그 날 나는 내 모습이 꼭 앵벌이 두목 같음을 느꼈다. 성당을 지을 기금을 마련한다는 핑계로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받는 어머니 들을 나는 길바닥 위에 거침없이 내보내 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덜덜 떨며 어찌 보면 나의 욕심을 위해 봉사(?)해 주었던 여성구역회 식구들에게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 없다.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양들 중에 더 보잘것없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 마저도 섬기셨다. 당신 뜻을 이루시려 양들을 마구잡이로 부리시기보다는 오히려 온 힘으로 섬기셨다.
새해에는 나도 그런 주님의 모습을 살아야 하겠다. 아무리 뭐라 해도 앵벌이 두목 은 결코 목자(牧者)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