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살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날짜를 잡아야 할 때가 많다. ‘본당 친교의 날’이라든지 ‘ ○○야유회’라든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행사들을 위한 날짜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본당 신부의 영적능력이나 성덕은 바로 이 택일(擇日)의 결과(?)로 판단되곤 한다.
지난 10월13일에 우리 본당 ‘친교의 날’이 있었다. 본당 관할구역 내의 한 초등학교와 그 옆의 구민체육시설을 빌려서 하였다. 오전에는 작은 운동회를 치렀고 오후에는 바자를 열었다. 온종일 본당 식구들 모두가 한마음이 된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아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악몽이었다. 그 전날 일기예보는 새벽에 약간의 비가 오고 아침에는 갤 것이라고 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깨어나니 웬걸 지난 밤에 비가 오질 않았던 것이다.
아침 6시에 바라본 하늘은 기분 나쁘게도 비를 머금은 구름 투성이었다. 30분쯤 더 지났을 무렵 드디어 본당 신부인 ‘나’의 ‘야무진 꿈(?)’-제1회 본당 친교의 날을 멋지게 치르는-은 여지없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우르릉 쾅쾅 콰광쾅 따다다당땅…’ 아! 그 날의 천둥소리는 내 평생 잊혀지지 않을 아주 생생한 소리였으며 동시에 나에게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였다.
아침 7시에 성당 마당에 모인 행사 준비위원들도 썰렁한 분위기였다. 그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말들. “금새 그칠 겁니다.” “에이 오늘 망가졌군.” “이 날짜 누가 잡았어!”(왜? 내가! 이 본당신부가 잡았다. 왜. 어쩔래?)
아침 8시가 되면서 비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노을처럼 잦아들기 시작하였고 30분 뒤 미사를 봉헌하려고 할 때에 비는 완전히 그쳐 버렸다. 그날 미사 중에 거양성체를 하면서 내 눈에 자연스럽게 들어 온 새파란 하늘은 ‘오! 나의 하느님 참으로 감사합니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런 하늘이었다.
그날 온종일 하느님은 우리 우면동 신자들에게 그런 하늘 빛으로 다가오셨고 우리 신자들도 그런 하늘 빛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갈 것을 다짐하였다.
본당신부는 본당 행사를 위하여 맑은 날만을 골라 찍어내는 점쟁이가 아니다. 한데 올 해 나의 ‘날짜 찍기’ 적중률(?)은 거의 100에 가까우니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감히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내년에도 좋은 날씨로 저에게 부조금(扶助金) 좀 많이 내 주시라는 것’이다. 그래야 하느님을 대리하는 이 본당신부의 체면이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