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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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광주대교구 사목특구 비금 도초도 석문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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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45km 떨어져 있는 비금도와 도초도.

1km 채 안 되게 떨어져 있는 두 섬은 1996년 ‘서남문대교’(길이 994m)로 연결되면서 ‘비금도초’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었고 광주대교구는 지난 2000년 8월에 이 두 섬을 관할 구역으로 하는 석문본당(주임 김용권 신부)을 신설하면서 ‘사목특구’로 선포했다.

사목특구는 광주대교구(교구장 최창무대주교)가 도서 지역과 농촌 지역의 신앙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각 지역의 특성과 현실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본당 사목구를 운영하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

예컨대 5개 공소가 합쳐져 하나의 본당으로 신설되면 그 중 한 공소가 본당이 되고 나머지 4개는 공소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온 기존의 공소운영 방식과 달리 사목특구에서는 5개 공소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닌 성당이 되어 독립 공동체로 운영된다. 현재 광주대교구에는 석문본당 외에도 전남 함평의 ‘하상본당’과 전남 진도의 ‘진길본당’이 사목특구로 운영되고 있다.
광주대교구의 첫 사목특구인 석문본당에는 성당이 모두 5개. 비금도에 중부·동부·서부 3개 성당이 도초도에 외남·도락 2개 성당이 있다. 본당 신자수는 300명.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의 이름을 딴 소공동체 사랑방이 20개 운영되고 있다. 20개의 소공동체 사랑방은 비금도와 도초도 두 섬의 신자들을 하나의 석문본당 신자로 연결시키는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다리로 이어져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 탓인지 두 섬의 주민들은 ‘남 남’ 처럼 살고 있다. 아직도 목포에서 출발한 쾌속선이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 바다 한 가운데에 정박해 있으면 두 섬에서 각각 작은 목선이 나와 여객선 양편에서 각 섬으로 가는 사람들을 태워갈 정도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비금도는 우리나라 최초로 천일염전을 들여와 엄청난 부자 섬이 됐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섬 모양이 나르는 새 모양을 닮았다” 해서 지은 ‘비금’(飛禽)을 “돈이 날아다닌다”는 뜻의 ‘비금’(飛金)으로 부를 정도였다. 반면 도초도는 농업을 고집해 소작쟁의가 항일 투쟁으로 이어질 만큼 가난하게 살았던 것. 경제적 격차가 심한 만큼 두 섬의 주민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주민들의 갈등은 신앙생활에도 반영돼 왔다. 올해로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지 98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2000년 8월에 본당이 설립되기 전까지 비금도는 목포 연동본당 공소로 도초도는 목포 산정동본당 공소로 나뉘어져 있었는가 하면 본당이 설립됐을 때는 각 성당의 위치를 알리는 도로 안내판의 거리 기준점을 놓고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첫 주임으로 부임한 김용원 신부는 그래서 두 섬의 신자들간의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소공동체 사랑방을 구성했다. 그리고 각 성당 지역에서 사랑방을 열게 하고 매일 사랑방을 방문해 미사를 드렸다. 김 신부는 사랑방 미사 강론 때마다 성서의 말씀을 인용해 “다섯 식구가 한 가정을 이뤄 잘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본당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소공동체 운동’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고 한 본당 신자라는 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 모든 성당에 감실을 설치하고 ‘성체 신심 세미나’를 개최해 성체성사에 대한 신자 재교육도 실시했다.

김 신부는 또 5개 성당 어린이들과 중고등학생들을 비금도 중부성당에 모두 모아 주일학교를 열고 어린이들부터 하나가 되는 사목을 펼쳤다. 그리고 5개 성당 신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대피정과 체육대회 바자 등을 펼쳤다.

지난 2년간 김 신부의 헌신적 노력 덕분인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이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석문본당 신자들이 지난 9월 비금 도초 5개 성당 중 가장 낡은 도초도 외남성당의 신축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비금도 신자들의 적극적 지원이 큰 힘이 됐다.

그래서 요즘 석문본당 신자들은 “비금·도초 신자들이 한마음이 되어 50년 전 밀가루 창고로 사용했던 외남성당을 헐고 새 성당을 짓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이제서야 한 본당 신자가 된 듯하다”고 흐뭇해 했다.

성전 건립을 위해 두 섬의 신자들이 기금을 내고 함께 모금을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성당이 어느 정도 지어졌나 궁금해 비금도 신자들이 매일 차로 현지를 방문할 정도로 우애가 돈독해졌다.
김 신부는 “소공동체 사랑방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신자들이 하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아직은 모든 점에서 미흡한 것이 많고 갈등도 남아있지만 신앙 안에서 더욱 굳건하고 화목한 공동체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석문본당 신자들은 ‘하나됨’의 상징인 외남성당이 제때 봉헌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을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성당 건립기금으로 2억원을 모았지만 아직 3억여 원이 부족한 상태이다. 또 외남성당뿐 아니라 다른 4개 성당도 새롭게 지어야 할 만큼 낡아 많은 자금이 필요한 상태이다.
건축위원장 강정우(69 바오로)씨는 “300명 신자 모두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부활·성탄 미사 때는 학교 체육관이나 운동장을 빌려 사용해 왔다”며 “100년 만에 본당으로 설립된 석문본당을 위해 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바란다”고 소망했다.
김 신부는 “60대 이상 가난한 신자들이 대부분인데도 가진 것을 다 내놓아 건축기금 2억원을 모았다”면서 “이제 육지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석문본당의 가족이 되어 새 성전 건립에 힘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도움 주실 분 : 농협 653129-56-008596 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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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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