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빠와 아들의 대화입니다. “아빠! 나 본명 바꾸잰(바꿀래요)!” “뭘로?” “쌍칼로.” “뭐? 쌍칼? 쌍칼이 뭐!?” 눈이 휘둥그레진 아빠를 보면서 여섯 살 난 다니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합니다. “아니 아니 아빠! 쌍칼 말고 김또깡(김두환)으로 바꾸잰!”
TV드라마 ‘야인시대’를 어린 아이들이 더 잘 보는 모양입니다. 김두환의 보스로서 결국 자신의 조직을 김두환에게 미련없이 물려주고 홀연히 사라진 사나이 쌍칼! 이 쌍칼이 다니엘 눈에 얼마나 멋있게 보였겠습니까?
4남매의 막내인 다니엘은 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유아독존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만난 후로 그의 행복은 끝이었습니다. 상가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두리번거리면서 저를 찾습니다.
제가 보이질 않으면 집에서 하던 그 버릇 그대로 나옵니다. 누구 하나 말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저와 눈이 마주칩니다. 재빨리 자기 엄마 등 뒤로 피난처를 옮겨 보지만 결국은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맙니다. 과연 저는 놈의 오야붕(왕초)이었습니다.
저의 멋있는 모습에 매료되어 녀석의 마음 속에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쌍칼이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 돌발 사태에 저는 위기 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 놈이 요 근래 주일학교에 몇 번 빠진 것이 기억납니다. 쌍칼한테 폭 빠져서 성당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화가 납니다. 당(?)을 배신한 종말이 어떤지를 보여 줘야겠는데….
그러다가 이번 주일이었습니다. 퇴장 성가에 몸을 싣고 신자석을 빠져나가는 순간 성가대석 맨 앞쪽에 자기 엄마 등 뒤에 몰래 숨어 있는 다니엘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손가락 하나로 그 놈을 제의방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과거의 벌벌 떠는 녀석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당당함마저 서려 있는 놈의 모습은 저를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쳐다보는 그 눈빛은 마치 ‘신부님 이제 나에게는 쌍칼 형님이 이수다(있어요)!’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망신살이 뻗치기 전에 저는 이 순간을 기회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녀석이 보는 앞에서 다른 때보다 더 멋있게 제의를 휘날리면서 벗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멋있게 말입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다니엘!! 너 들어봔(봤니)? 쌍칼 신부님이랜(이라고)! 신부님들 중에도 쌍칼 신부님들이 이서(있단다)!”
갑작스런 저의 공격에 놈은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님들 중에서도 쌍칼이 있다는 저의 말에 감탄스러운 듯 큰 눈망울을 떼굴떼굴 굴리면서 녀석이 묻습니다.
“그럼 나도 쌍칼 신부님이 될 수 있는 거우꽈(거예요)?” 저는 이때다 싶어 대답합니다 “그럼! 그런데 쌍칼 신부님은 다른 신부님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주일학교도 열심히 나오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엄마 아빠 말씀도 잘 듣고 누나들하고도 사이 좋게 지내야 하고 착한 일도 더 많이 하고….” 흐뭇해 하는 내 모습을 다니엘은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날 밤 잠자기 전에 예수님께 물어봤습니다. “쌍칼 예수님! 저는 진정한 쌍칼 신부인가요?” 쌍칼 신부님들이 그리운 가을밤입니다.
** 다음 필자는 까리따스 수녀회의 배명순(아타나시아 서울잠실종합복지관 관장) 수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