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증진에 협력…대화 추진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의왕시 아론의 집에서 열린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아시아 자문회의에서는 아시아 12개국의 종교간 대화 현황에 대한 각국 보고가 있었다. 회의에서 발표된 보고서들을 중심으로 아시아 각국의 종교간 대화 현황을 살펴본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외래 종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아시아 각국은 그리스도교를 제국주의의 선봉이거나 부산물로 인식했다. 문화적 정치적인 국가 및 민족주의는 종교에도 영향을 미쳐 그리스도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갖게 됐고 교회는 이러한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종교간 대화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은 헌법에 종교 자유가 보장돼 있지만 실제로 교회는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1985년 설치된 주교회의 종교간 대화위원회 초대 의장이었던 존 조셉 주교는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한 차별적 재판에 항의해 희생될 정도로 대화는 지난한 과제였다.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만의 국가이기를 열망하며 그리스도교를 억압했다. 9?11테러 이후 교회는 친미주의자로 분류돼 근본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역시 전체 인구의 87를 이슬람이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종교간 대화는 많은 장애를 안고 있다. 주교들의 사목교서에서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이 항상 강조돼왔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종교간 대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종교 건물은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개인 집에서 예배 행위를 할 수도 없다. 선교를 위해서 외국의 지원을 받아서도 안된다.
69가 불교도인 스리랑카는 최근 20년간 인종 분쟁으로 6만여명이 희생됐다. 이는 종교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난 총선 후 새로운 희망이 생겼고 1997년 이후 종교간 대화를 위한 노력이 재개됐다. 위원회가 다시 설치됐고 10개의 대화 센터가 설립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불교도들은 종교간 대화에 개종의 저의가 깔려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소수 종교들간의 관계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슬람 외 소수 종교들은 불이익을 받아왔고 종교간 대화는 소수 종교들의 권익 증진의 장이었다. 이에 따라 이슬람은 종교간 대화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대화는 복음적 소명에 따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였다. 미얀마에서의 종교간 대화는 사실 거의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주교회의 종교간대화위원회가 있으나 경험과 지식 관심 부족으로 대화가 어렵다. 특히 대부분이 불교도이고 그리스도교가 소수인 미얀마에서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갖는 교회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뿐일 경우가 많다.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종교간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산업화가 이뤄지고 국제화된 지역에서는 대체로 종교간 대화가 활기를 띠고 있다.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후에도 동서방 문화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1972년 공의회 정신에 따라서 종교간 대화위원회가 설치됐고 1977년 6개 종교 지도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사무국을 두었다. 수시로 대화 모임을 가지면서 상호방문을 하고 매년 음력 설마다 공동 신년 메시지를 발표한다.
전통 종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만은 비록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외래종교이지만 교회의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 영향력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대화 모임이 시도돼왔다. 대만에서는 이미 공의회 이전부터 대화 모임이 존재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가톨릭 국가 필리핀은 1991년 주교회의 차원에서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선언하고 이후 여러 가지 성공적인 사례들을 축적하고 있지만 종교간 대화에 대한 관심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가톨릭 교회의 교세가 워낙 미약한 일본에서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공동 대처로서 종교간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전국 차별반대기구」는 1981년 창설돼 68개의 종교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 사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회적 차별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의 시라야나기 추기경은 현재 세계 종교인평화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종교간 대화가 가장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는 한국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대화가 모든 차원과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특히 일반 신자 계층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은 특별히 개신교와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한국의 종교간 대화에서 고민 중의 하나는 지나치게 종교간 대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8~9에 불과한 복음화율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혼란은 복음 선포에도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우선은 사회정의 실현 자선 공동선의 증진 등에서의 협력 증진을 위한 공동 대응이라는 의미에서 종교간 대화를 추진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한국 교회 관계자의 말이다.
아시아 대륙과 아시아 교회에서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든 지역교회가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과거와 비교해볼 때 진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타종교에 대한 획기적인 자세 전환을 이룬 교회는 다양한 대화 노력을 해왔는데 특히 대희년을 지내면서 이 같은 자세는 더욱 강화되고 구체화됐다.
그러나 종교간 대화는 새천년의 벽두에 인류에게 충격을 준 9.11 테러와 그에 이은 국제 정치사회에서의 갈등 구조로 주춤하는 듯했다. 문명간의 충돌로까지 오인된 테러와 그 후유증은 종교가 갈등과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듯 했으나 이 같은 상황은 오히려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박영호 기자 young@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