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가정방문’은 우리 병원의 중요한 활동의 하나다. 1960년 개원 당시부터 무료로 계속해왔으며 198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팀을 갖추어 홀몸노인 말기질환·욕창 환자를 돌보아왔다.
현재 가정방문실은 방문 간호사 5명과 수사 1명이 팀을 이뤄 대상 가정을 방문해 직접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하루는 한 아주머니가 아기를 등에 업고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동네 의원에서 소개해줘 이곳에 왔다는 아주머니는 16살 된 여고생 딸이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 힘들어 한다며 울먹였다.
딸 아이가 다리를 절어 대학병원에 갔더니 오른쪽 대퇴골에서 골수암이 진행되어 온몸으로 퍼지고 있어 의료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뒤 암의 진행 속도가 더욱 빨라 딸아이는 거동할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됐으며 심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했다. 대소변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소녀의 상태를 파악하고 함께 간 방문 간호사는 먼저 소변줄을 꽂고 손으로 돌덩어리가 된 대변을 파냈다. 그리고 담당 의사와 상의 한 후 통증과 증상 조절을 해주었다.
일주일에 3-4회 방문한 간호사 덕분에 통증이 완화되고 증상이 조절되자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간호사를 ‘이모’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소녀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곳은 11평의 영구 임대 아파트였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헤어져서 살다가 3년 전 어머니가 재혼해 여동생을 낳았다.
소녀는 중학교 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가까운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도움도 주고 있었다.
소녀는 3개월 후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호흡곤란이 심하게 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하늘나라는 이 세상보다 더 좋은 나라라고 하면서 오히려 우는 어머니와 나를 위로할 정도로 신앙에 의지하면서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의식이 떨어지고 온 몸이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달려갔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었다. 임종을 확인하고 우리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장례 비용은 모두 무료로 처리해 주었다.
얼마 후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다. “딸 아이를 화장해 섬진강에 뿌린 뒤 꿈을 꾸었어요.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내는 딸의 모습을 보고 나니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슬픔 속에서도 미소를 띠며 모처럼 환한 모습을 보여준 그녀의 어머니를 보면서 어린 나이지만 고통을 잘 참으며 죽음을 준비했던 그녀에게 다시금 고마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