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사회의 한국 무속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의 무속은 종교가 아니라 사람들을 현혹 시키는 비합리적인 미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한국 무속은 한국의 대표적 종교이기 때문에 그 명칭도 ‘무속(巫俗)’이 아닌 ‘무교(巫敎)’가 되어야 하며 무당도 나름의 분명한 종교적 체험을 가지고 있는 종교적 사제의 하나라고 말한다.
무속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당을 찾아가고 굿을 행하고 있으며 무당의 수도 결코 줄지 않고 있다. 무속이 한국인의 삶에서 차지했고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다시 읽기’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무당의 개념을 폭넓게 규정한다면 앉아서 독경(讀經)을 위주로 하는 ‘앉은 굿’을 행하는 법사 법사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으나 1950년대 이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소경 판수 그리고 무속 의례인 굿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며 주로 점이나 쳐주는 점쟁이 태주 명두 보살 등 이른바 선무당들도 역시 무당의 범주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선무당의 경우 이전에는 숙련된 일반 무당과는 분명히 구분되었으나 현재에는 그런 구분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모두 다 무당으로 통칭되는 상황이다.
무속의 사제인 무당은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눠진다고 알려져 있다. 신내림 체험인 신병(神病)을 통해서 된 무당이 강신무이고 이와는 달리 무당의 집안에서 태어나거나 무당집안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무업(巫業)을 이어받아 된 무당이 세습무라는 것이다.
강신무의 경우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신내림 체험을 겪은 다음에 내림굿을 해야 되며 내림굿을 해준 무당으로부터 굿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이에 반해 세습무는 신내림 체험이 없기 때문에 내림굿을 할 필요가 없으며 굿의 절차나 춤사위 악기 다루는 법 등 굿과 관련된 것을 배워서 무당이 된다.
이들 무당들의 굿은 ▲신을 청하여 맞이해 드린 다음(청신 請新) ▲신과 인간이 만나 의사소통을 갖고(오신 娛神) ▲신을 돌려 보내는(송신 送神) 구조로 설명하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과 신이 만나는 것이 굿의 핵심부다.
신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은 자신이 봉착하고 있는 삶의 문제의 해결을 확신하고 그럼으로써 굿을 하게 된 목적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무속은 이처럼 기복 추구의 종교이다. 무속은 출생 죽음 질병의 치유 집안의 평안과 번창 등 인간 삶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의 해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흔히 무속의 굿이 기복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른바 기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현실의 정직한 반영이다.
기복 추구의 모티브는 무속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다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무속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신들을 전제하고 있으며 의례를 통해 그러한 신들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속에서의 신들은 인간의 삶이 이뤄지고 있는 집안이나 마을 같은 생활 공간 그리고 산이나 바위 바다 하늘과 같이 자연적 환경 또한 조상이나 장군 잡귀 잡신과 같은 죽은 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무속에서는 생활공간 자연환경 죽은 자 등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 삶의 문제가 야기되고 해결되며 아울러 복까지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굿은 오늘날 우리에게 삶의 공간과 자연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조화 죽은 자를 포함한 이지러진 가족관계의 회복 공동체의 유대감 강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용범(서울대 감신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