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지만 원불교는 그 교세나 교리의 뛰어남에 비해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거개의 한국인들에게 원불교는 이렇다 할 확실한 이미지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 본 바로는 원불교는 우리 민족이 산출해낸 자생종교 가운데 전 세계 종교 시장에 내 놓아서 전혀 꿀릴 게 없는 그런 뛰어난 가르침이다.
교조인 소태산이 지니고 있는 원융자재(圓融自在)적이고 합리적인 사상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과연 이런 뛰어난 천재가 아주 가까운 과거에 우리 주변에 있었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은 그저 평범한 농사꾼 출신이지만 11세 때부터 산에 올라가 치성을 드리는 등 구도열이 치열했다. 끊임없이 구도에 정진하던 그는 26세가 되던 1916년 4월28일 이른 새벽 정신이 맑아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의 교단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 ‘정신개벽’이라는 핵심 개념을 잡고 교리를 체계화한 일일 것이다. 특히 소태산은 다른 성자들과 달리 본인 스스로 교리를 체계화 시켰다. 소태산의 사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한마디로 ‘개벽사상’이라 보는 데에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여기서 개벽 사상은 △새로운 자아의 수립 △새로운 세상의 건설 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이념에서 잘 알 수 있다.
원불교에 대한 설명은 불교와의 차이점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소태산이 보기에 전통 불교는 전 세상을 아우를 수 있는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원불교는 교무(출가한 원불교의 교직자 명칭)가 될 때 결혼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남자 교역자들은 결혼을 한 상태이다. 그러나 소태산의 뜻과는 달리 현재 여성 교역자들의 경우에는 결혼한 사람이 없다. 교단 내외에서 이것을 두고 소태산이 주장한 남녀 평등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두고 볼 일이다. 아울러 원불교 출가자들은 필요에 따라서 직업을 가져도 된다. 경전도 원불교는 한글로 되어 있다. 쉬운 한글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수준이 한자로 씌어진 불경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또 소태산이 보기에 전통적인 민간 불교는 지나치게 등신불을 중심으로 한 구복행위에 매달려 왔다. 이제는 인지가 개명하는 시기라 무정물인 등신불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온 게 일원상(一圓相)에 대한 믿음이다. 일원상이야말로 진리의 본체라는 것이다. 이 일원은 모든 언어나 사고를 초월한 절대공(絶對空)의 자리 즉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자리다. 신(神) 하늘 도(道) 등 모든 것들은 모두 일원으로 통칭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태산의 가르침이 얼마나 소상하고 합리적인가를 알 수 있는 예를 하나만 보자. 전통 불교에서는 모든 일을 불상에다 비는 그런 구복 행위를 많이 해오고 있다. 소태산에 의하면 이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하루는 소태산이 길을 가다가 노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말을 잘 듣지 않는 며느리의 버릇을 고쳐 달라고 불공을 드리러 간다고 했다. 이때 소태산은 등신불에다가 빌지 말고 그 돈으로 며느리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서 갖다 주라고 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며느리가 쥐고 있는데 왜 엉뚱한데다가 돈을 바치냐는 것이다.
소태산의 법설은 이런 식으로 계속 된다. 이런 세세하고 자상한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면 평범한 우리들은 새로운 개벽시대를 맞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런 새로운 인간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태산은 인간 개개인의 개혁과 사회의 개혁을 둘로 보지 않았다.
이 짧은 글에서 광대한 원불교 교리체계를 모두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불교에서는 소태산과 더불어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선생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못했다. 정선 종법사는 원불교 교전을 간행하고 원광대학을 창립하는 등 교단 조직의 확립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남겨진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