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유다교 이슬람 힌두교 유교 도교 증산교 불교….’
세계의 모든 종교를 한눈에 본다. 까리따스수녀회 노원 생활성서 문화센터(소장 황성옥 수녀)는 14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일산 주엽동성당에서 ‘종교의 세계’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7월30일까지 계속될 이번 강좌에는 박태식 서강대 교수를 비롯해 김영경(이슬람) 오지섭(힌두교) 송항룡(도교) 이찬수 박사(불교) 등 각 종교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할 이번 강좌의 내용을 12회에 걸쳐 요약 소개한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부터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창조주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만큼 그리스도교는 천지창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교회는 언제부터 생겼을까’라고 슬쩍 질문을 바꿔 보면 어떨까. 교회는 30년경 오순절 성령감림 사건(사도 2 1-12)으로 탄생했다.
이때 1세기 당시 그리스도 교회의 구성원은 본토에 거주하던 유다계 그리스도인 국외 거주 유다인(디아스포라) 이방계 그리스도인 등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들 사이에는 율법과 관련해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유다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과연 할례 등 율법을 지켜야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9년경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사도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바울로는 이방인에게는 율법의 의무가 없다는 것을 주장했다. 만일 사도회의에서 바울로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면 그래서 할례 정도는 허용했다면 오늘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세계의 모든 남성 그리스도인들은 태어난 후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이고 매년 한차례씩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사람들로 인천 공항은 북새통이 됐을 것이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는 바로 신앙의 자유를 얻는 길이었다.
또 1세기 그리스도 교회에는 크게 보아 베드로를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도 운동(베드로계 운동) 바울로를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도 운동(바울로계 운동) 요한 혹은 애제자를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도 운동(요한계 운동) 등 대략 세 갈래의 그리스도 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들은 후에 베드로 계열을 중심으로 뭉쳐져 하나의 교회가 등장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정통성에 관한 논쟁이 줄을 이었고 많은 사상들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다가 중세를 지나면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분리되면서 정교회가 등장했고 르네상스 이후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 대변되는 그리스도교 정통성에 반기를 든 개신교가 등장했다. 교회가 분리될 때면 언제나 정통성 문제가 그 중심을 차지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통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지난 2000년간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의 상황을 보면 마치 세계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정통성 싸움을 도맡아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 마저 든다.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이란 그리스도 정신에 그 존립의 근거를 둔다. 그런데 만일 전통의 껍데기만 남고 정신이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느님과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두고 목숨을 거는 풍토는 언제쯤 사라질까. 사실 하느님은 원래부터 이름이 없는 분인데 말이다. 철에 맞지도 않는 미국의 추수 감사절을 지내느라 이미 철 지난(?) 햇과일을 제단에 바치는 개신교의 코미디는 어떻게 설명할까.
역사의 예수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당시의 율법은 유다 땅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예수에게는 그 정신이 사라진 율법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었으며 사람이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폐기해야 마땅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마르 3 27). 필자는 전통과 정신의 관계를 이렇게 잘 표현한 말씀을 이제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