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본당/공동체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다산 강진 유배중에도 천주교와 관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달레(파리외방전교회 신부)가 저술한「한국 천주교회사」의 원사료인 다산 정약용의「조선복음전래사」가 실재로 존재했고 성 정하상(바오로) 순교자가 전라남도 강진에서 삼촌인 정약용으로 부터 학문을 사사 받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제기돼 교회사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사연구소 사료조사단(단장 최석우 신부)은 정약용이 18년(1801-1818)간 유배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을 답사하고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 같은 가능성을 제기하고 보다 확실한 사료적 근거를 찾기 위해 12월 중순 다산기념사업회 설립자 윤동환 선생과 간담회를 갖고 내년에 강진을 재답사키로 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사료조사단이 이 같은 가능성을 제기한 근거는 답사 결과 강진에서 발굴된 다수의 정약용 인장에서 십자가 모양이 새겨져 있는 사실과 다산이 강진에서 가르친 다신계(茶信契) 18명의 제자들 중 이승훈(베드로)의 아들 이택규(다산이 그의 외삼촌이 됨. 다산의 누이가 이승훈의 처)와 순교자 윤지충(바오로)의 양자 윤종영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답사로 알게 됐기 때문.
사료 조사단은 이 사실을 근거로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생활 중에도 천주교와 관계했고 또 십자가를 새긴 인장은 다산이 자신의 믿음을 상징적으로 고백한 것으로 천주교 신자로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석우 신부는 “다산은 천주교를 공격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던 이기경(1756-1819)의「벽위편」에 대한 답변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글을 남겼을 것이고 다블뤼 주교가 다산의 글을 기초로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에 관한 비망기를 남겼으며 1811년 교황에게 보내는 신미년 편지를 작성할 때도 정약용이 관여했다는 고백을 근거로 추론하면 유배지 강진에서「조선복음전래사」가 쓰여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또 “현재 달레의「한국 천주교회사」에는 정하상이 함경도 유배지에 있는 조동섬에게 학문을 배운 기록만 남아있는 데 다산이 강진에서 천주교 관련 인물들을 제자로 삼은 사실로 보아 조카인 정하상을 가르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서종태 박사도 “정하상이 다산에게서 학문을 배웠을 개연성이 높다”며 “이번 답사를 계기로 다산과 천주교 관계를 학술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강진을 답사한 한국교회사연구소 사료조사단에는 최석우 신부와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원순 교수 서종태 박사 방상근 연구원 한창언 부장 양업교회사연구소 연구소장 차기진 박사 등이 참여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1-12-0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4

1베드 2장 19절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