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사형수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방문했고 곧 이어 국회의원 155명이 ‘사형제도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종교계는 왜 사형제도 폐지에 적극적인가.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는 세례식 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신앙을 갖는다고 고백한다. 내게 하느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생명’이다. 하느님은 생명이시고 그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 진정 이루고자 했던 것은 하느님 나라이다. 생명과 삶이 넘쳐 나는 신명나는 세상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한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 거지 부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회에서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명이 있으되 생명이 생명답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가기 싫은 곳 그곳에 가면 죽음이라고 느끼는 곳이 여
러 곳 있다.??그 중에서도 가장 가기 싫은 곳이 바로 교도소이다.
그곳에 찾아가 재소자들을 만나는 동안 그들 역시 피해자이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임을 알게 됐다. 특히 젊은 재소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교에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감옥에 갇힌 형제들은 마음이 아픈 병자들이다. 오랜 냉대와 무관심으로 마음의 병이 심하게 들은 사람들이다. 사형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흉악한 사람들이 새롭게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한 형제의 편지다.
“저는 많은 혜택과 특권이 부여된 ‘붉은 명찰’ 곧 최고수의 자리에서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최고수가 되고 나서야 마음의 눈과 영혼의 귀가 열려 겨우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데 다시 지옥 같은 옛날로 돌아가라니 반갑지 않은 말입니다. 저는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합니다. 비록 매일매일 죽음과 마주앉아 두려움을 삭혀야 하지만 그 두려움은 오히려 제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피해자의 생명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왜 가해자의 인권과 생명을 이야기하면서 피해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느냐 반문하기도 한다.
미움과 저주 한을 한평생 간직하고 사는 사람 역시 죽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움은 미움만을 키우며 자기 자신을 죽이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화해와 용서를 통해 죽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옷을 갈아입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느님은 어떻게 하든 살리기를 원하시는 생명의 하느님인데 우리는 죽이는 제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 제도 역시 살리기 보다는 끝없는 경쟁과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해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의 문화 죽임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로 변화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 두 번째 형 집행이 있던 때입니다. 이제 겨우 스물 셋의 나이로 형장으로 가기 위해 내 방을 지나며 ‘형님 먼저 갑니다’라고 인사하던 젊은 사형수에게 ‘그래 나도 곧 갈거야’ 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친구와 짧은 인사를 나누며 참으로 그의 맑은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있을 법한 두려움의 기색은 없이 오히려 해맑은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참회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로운 모습 그의 눈이 그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