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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처녀시절로 돌아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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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우리 함께 가요. 오늘은 함께 안가면 안돼요.

평소에 매우 점잖고 조용하신 할머니가 오늘은 웬일인지 애절한 표정으로 청년봉사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르셨다. 봉사자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연유를 알아보니 봉사자한테 할머니 자신의 얘기를 자꾸 하며 부모님께 인사하러 같이 가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가서 할머니! 지금 연세가 얼마 세요? 하고 여쭸더니 뭐라구요? 나한테 그렇게 묻지 말아요. 난 할머니가 아니에요. 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 성함을 부르며 나이를 물었더니 “저요? 스물 둘인데 이제 시집 가야 해요. 라고 대답하셨다.

직감적으로 ‘아! 할머니가 지금은 20대 처녀시절로 가 계시는구나.’를 깨닫고 “그러세요? 그러면 저 청년은 누구죠? 했더니 “응 저 사람은 내 신랑감인데 내 말을 잘 안 들어서 골치가 아파요. 오늘 부모님이 기다리실 텐데….

이럴 때는 아니라고 부정할게 아니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할머니의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게 상책이다. “할머니 +++가 누구죠? 하며 제일 좋아하는 아들 이름을 언급하니 그때서야 “응 그 애? 내 셋째야. 걔가 왔어? 아니면 언제 온대? 하시며 금방 80대의 넉넉한 노년기로 돌아와 주셨다.

우리 치매어르신에게 가장 먼저 시작되고 수시로 함께 하는 증세가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며 장소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남력인식 불가능 증세이시다. 함께 대화를 하다 말고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하시거나 먼 옛 추억속의 얘기를 현재인 듯 실감나게 하신다. 늘 가까이 모시던 가족에게는 이런 증세가 가장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날마다 얼굴 마주하는 며느리를 보고 누구냐며 갑자기 엉뚱한 얘기를 하시고 아들더러 아버지 또는 신랑이라고까지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실제 그렇게 믿고 아들한테 아버지 대접을 하거나 남편대접을 하게 되어 황당한 정도가 아니라 가정불화까지 야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둘러보면 가족들의 감정과 정서는 엉망이 되어있고….

이런 어려움의 반복 속에 우리 치매어르신의 가족들은 점점 피폐해가며 삶의 고통을 운운하게 되고 노년은 비참하다는 부정적 인식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삶은 가치 있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법칙에서 이 현실을 해석한다면 하느님께선 인간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기에 이런 역설적(?) 방법으로 인간들을 단련시키시는 걸까? 어떤 기도로 하느님께 우리가 노년기에 거쳐야 하는 이 심각한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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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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