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3시 지금은 묵주기도 시간. 간식이 끝나고 우왕좌왕하시는 어르신들을 둥그렇게 의자에 앉혀드리고 기도를 시작하면 종교가 없으신 분들까지 착한 양처럼 앉으셔서 함께 하신다.
묵주기도를 한참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총이고 꼬리총이고 뭐고 모리요(몰라요).” 한 할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배회증이 심해 온종일 방안을 서성이시는 게 유일한 낙인 할머니는 그래도 기도시간엔 손잡고 앉아 함께 하면 좋아하시곤 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심사가 거북하신 듯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앉아 계시더니 폭발음을 내신 것이다.
기도를 하다 말고 얼른 곁에 가서 귓속말로 “할머니 은총은요 하느님이 인간한테 주시는 최고로 좋은 선물이래요. 아들 ++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했더니 금방 얼굴이 펴지시며 경건한 표정을 지으셨다. 한 오분쯤 흘렀을까 또다시 “와-자꾸 죽능건 들멕이고 난링교? 나 참-”하시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역정을 내셨다. 아마 성모송의 기도문 중 `...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의 부분이 귀에 거슬리신 것 같다.
할머니 귀에다 대고 “모친- 우리가 요담에 죽을 때 고생 덜하고 죽게 해달라고 비는 거예요” 하고 다시 설명을 해드렸더니 금새 겸연쩍은 듯 “그라믄 몰라도…” 하시며 이번엔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묵주기도 5단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계셨다.
이 할머니는 연세가 83세다. 경상도 지리산자락 어딘가가 고향으로 2년 전 치매가 오기 전까지 그곳에서 수십 마지기의 농사를 혼자 다 지으시어 서울에 있는 아들딸들에게 싸서 보내주는 낙으로 지내오셨다고 한다. 특히 아들들의 건강과 평안이 자신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으신 듯 아들들 얘기만 언급하면 무슨 상황이든 순종하시고 적극적인 호응을 하시는 분이시다. 평소에 경우가 바르고 십리길이 넘는 읍내에까지 걸어서 자식들 잘되라고 교회를 매주 빠지지 않고 다니셨다고 한다.
처음 우리 집을 이용하셨을 때 배회증이 유난히 심해 집을 나간 뒤 걸어서 한시간 정도나 되는 반포대교를 지나 동부이촌동까지 가서 그곳 파출소에서 모셔온 적도 있다. 이렇게 온 식구들을 고생시킨 탓에 모두들 고개를 흔들 정도였으나 그러는 중에도 할머니의 깊은 모성애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인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사랑 받는 문제 할머니(?) 1위의 자리에 계시는 분이시다.
기도를 끝내자마자 할머니는 또다시 일어서서 실내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중얼중얼하시는걸 보니 아직 자녀들을 위해 못다 한 기도를 계속하시는 거 같다. 도대체 자녀들이 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