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산골짜기까지 선교영역을 넓혀가던 메리놀회는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중대한 고비를 맞았다.
평소 외국인 신부를 눈엣가시 처럼 여기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미국과 전쟁을 하는 마당에 미국인 신부들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일본 경찰은 즉시 메리놀회원 전원을 평양시내 양촌과 신의주 진사동본당 사제관에 나눠 감금했다.
전교와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던 벽안의 수녀 15명도 영유수녀원에 모두 감금됐다. 이때 한국인 수녀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 유 제니아 수녀는 “내 파란 눈을 파내고(빼고) 다른 것을 넣어 주시오. 그러면 조선 수녀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하며 이별을 안타까워 했다.
평양교구장 오(William F. O shea) 주교 역시 노기남 대주교로부터 조선 총독부의 미국인 추방계획을 전해 듣고는 “내 양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 나는 평양에 백골을 묻고 싶다.”며 한국에 남아있기를 간청했다.
하지만 조선 총독부는 신부와 수녀들의 이런 바람을 무시했다. 총독부는 1942년 6월 1일 35명의 성직자를 비롯해 수사 수녀들을 모두 미국으로 추방했다. 피의 대박해 가 휩쓸고 지나간 이역만리 낯선 땅에 들어와 피와 땀으로 교회를 다시 세우던 메리놀 회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배에 올랐다.
메리놀회가 다시 한국에 진출한 때는 해방 후인 1947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북한지역의 선교 기반을 모두 잃은 회원들은 남한에서 처음부터 기초를 다시 놓아야 했다. 부(夫) 신부 안(安) 신부 등은 서울 명동성당에 거주하면서 교회와 미 군정 당국간의 업무를 담당했다.
이 무렵 한국교회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1920년대 평안도 선교의 개척자인 방(方) 신부가 교황 비오 12세의 명을 받고 초대 주한 교황사절로 부임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뛰어난 외교적 수완으로 패전의 혼란을 수습하는데 도움을 준 그가 서울에 도착하자 이승만 정부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방 주교는 1948년 유엔총회에서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을 때 막후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년간 교황사절로 있는 동안 북한에 남아있는 성직자들이 공산치하에서 박해를 받는 것을 몹시 괴로워했다. 그는 교황사절 자격으로 처음 발표한 성명을 통해 종교박해를 일삼고 성직자를 체포 투옥하는 공산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공산당은 평양방송을 통해 만일 방 주교가 자기들 손에 붙잡히면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1950년 6.25 사변이 발발하자 방 주교는 외국인 신부들을 일본으로 피신시킨 후 교황사절관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체포됐다. 인민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그해 10월 31일부터 11월 17일까지 만포에서 중강진에 이르는 250리를 끌려가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 을 하다 중강진 부근에서 병사했다. 임종 직전 그는 “성직의 영광을 받은 후로 그리스도를 위해 여러분과 함께 고통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이 내 생애의 가장 큰 영광이오. 착하신 하느님께서 이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오.”(레이몬드 주교의 「쇠사슬에 얽힌 대사」에서)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 중에 그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리놀 회원들은 포성이 멎자 복음화의 열망 을 품고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평양이 아닌 부산항으로 재입국한 노안의 목(睦) 신부는 평양에서 내려온 신자 200여명과 빙 둘러 앉아 눈물의 미사 를 봉헌했다.
전쟁이 끝나고 교세가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자 메리놀회는 청주교구와 인천교구의 사목을 위임 받았다. 청주교구의 초대 교구장이 된 파(James V.Pardy) 주교는 회원들과 함께 눈부신 선교활동을 벌이면서 교구의 자립을 준비시켰다. 1970년 파 주교가 고령으로 교구장직에서 물러나고 정진석 신부(현 서울대교구장)가 새 교구장이 됨에 따라 청주교구는 자치교구가 되었다.
메리놀 회원들은 특히 인천교구에서 괄목한 만한 선교사업을 수행했다. 1961년 회원인 나 굴리엘모 주교가 교구장직에 오른 후부터 옹진군 강화군 등 도서지역 개발에 역점을 두고 선교활동을 벌여 나갔다. 미국에서 구호물자를 실어다 나눠주고 전기를 끌어오고 의료시설을 운영하면서 섬 주민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했다.
현재 메리놀회 한국지부에 소속된 성직자는 23명. 이 가운데 5명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 성직자들은 병원 원목실 등 특수사목과 영성지도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