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전화상담으로 왼쪽 귀에 통증까지 느껴진다. 컴퓨터 앞에서 이런저런 사업계획이나 기획안을 작성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머리 속을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잡아먹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본당 사회복지분과나 사회복지시설에서 행정이나 복지서비스에 대한 문의도 있지만 요즈음에는 유료 양로시설이나 장애인 시설에 대한 입소문의가 부쩍 많아졌다.
어느날 한 자매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 속에 들려오는 들릴 듯 말 듯 낮은 목소리가 신경을 곤두세운다.
“저는 정신지체 아동을 데리고 있는데 어디에 맡길 수 없나요. 아이 때문에 집이 엉망이 되고 있어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분명치 않아 전화기를 든 손은 더 힘이 가고 귀 가까이 들이댄다.
“아이가 15살인데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학교에서도 교육시킬 수가 없다고 하고… 어디 먹고 자고 할만한 곳을 알려주세요.…서울에 살지만…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부모가 있어서 안된다고 그래요….” 그 자매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15살 된 정신지체 사내아이를 데리고 사는 그 자매는 현재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생계를 꾸려가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했다. 그 동안 아이에게 좋다는 교육은 있는 돈을 전부 털어서 시켜보았지만 아이의 상태는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고 지금은 아이로 인해 하나있는 동생에게 교육도 시킬 수 없는 처지에 가정도 깨질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아이를 시설에 입소시키려면 버려야 된다고 하는데 양심상 그럴 수는 없고 적당한 곳을 알려주면 아이를 맡기고 1주일에 한번씩이라도 가서 봉사를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물질적으로 후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 자매는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매의 슬픔은 더 깊어지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매번 전화상담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마도 시설에 대한 입소 문의에 답하는 것이다.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도 아니고 부양가족이 있는 노인이나 장애인 가족들이 전화를 할 때면 사실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못하고 그냥 그들의 처지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장애인이나 그 부모의 고통은 천행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고통을 통하여 부활의 기쁨을 누리셨듯이 인간 고통에 구원의 빛을 던져주신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과 그 부모의 절망에 가까운 울부짖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 우리들 각자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장애인들의 고통이 구원에 이르는 빛이 되도록 하소서!’
▲다음 필자는 약물 관련 청소년을 위한 보금자리 ‘새 샘터 치유 공동체’ 책임자인 예수회의 김영근 신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