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모어
정치인들의 수호자로 선포
【바티칸=CNS】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1월 5일 공직자 들의 대희년을 앞두고 10월 31일 성 토마스 모어(사진.1477 ~1535)를 정치인들과 정부 공직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영국의 인문주의자이며 작가 정치가였던 토마스 모어는 런던 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사제직을 지망하기도 했으나 결국 평신도의 길을 택해 금력이나 권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위해 평생을 살아간 인물이다.
영국왕 헨리 8세의 통치 아래 하원의장을 지낸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에 반대해 왕비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음 으로써 분노를 사고 1534년 왕의 권위를 부인했다는 명목으로 런던 탑에 감금 이듬해인 1535년 7월6일 반역죄로 참수됐다. 이후 1886년 정부 문서 공개로 모어의 행적이 드러남에 따라 시복조사가 시작됐고 사후 400년만인 1935년 5월20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됐다.
전 이탈리아 대통령 프란체스코 코시가가 베네주엘라 하원의원 힐라리온 카르도조와 함께 제출한 청원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받아들임으로써 성사된 이번 선포는 특별히 청렴하고 정의로운 정치인으로 일생을 마친 토마스 모어의 성덕을 따르도록 모든 정치인들을 초대한다.
코시가 전 이탈리아 대통령은 토마스 모어를 지칭해 어떤 인물 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요청한 평신도의 소명을 완전하게 살아낸 특별히 현대적인 성인 이라고 말했다.
토마스 모어의 생애
토마스 모어는 그의 주저 유토피아 로 인해 후대에 유토피아 사상의 창시자로 평가받았다.
그는 이 저서에서 당시의 유럽 특히 영국의 사회상을 날카롭게 분석 비판했으며 제2권에서는 이상적 사회생활을 기술했다. 인문학자로서의 그의 업적 외에 그가 공직 생활에서 보여 준 모범은 현대 정치세계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1521년 재무차관에 임명되고 기사 작위도 수여받은 그는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서 당시 영국왕 헨리 8세 통치 하에서 하원의장에 선출됐다.
그러나 1527년 왕은 캐서린과의 결혼이 무효임을 선언했고 모어는 이를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총애를 받은 모어는 영국 최고대법관으로 임명됐으나 영국 성직자들이 왕을 영국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함을 알고 수장령 선서를 거부 대법관을 사임키로 결심했다. 1532년 캔터베리 대주교가 왕을 영국교회 수장으로 인정하던 날 왕에게 간청 대법관을 사임했다.
1533년 왕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볼린을 왕비로 책봉했으나 모어는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고 결국 1535년 반역죄로 처형됐다. 토마스 모어는 고귀한 인품과 높은 도덕성을 지닌 인물로 청빈하게 살았으며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