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선구자 전남 함평군 학다리 석정공소 사람들
전남 함평군 학교(학다리)면 월호리 용호우리농마을. 양연모(50·베드로)씨를 비롯한 4명의 신자가 94년부터 마을 주민들에게 무농약 농법을 보급해 정부로부터 친환경 마을 로 지난해 지정받았다.
이들 넷은 또 환경농업협의회와 (재)함평천지유기농을 설립 유기농법을 군 일대로 확산시켜 함평군이 친환경농업 을 주요 군 행정 전략사업으로 추진토록 하는 엄청난 일을 일궈냈다. 전교의 달을 보내며 신앙 안에서 생명농업을 시작해 함평군의 환경정책을 바꿔놓은 월호리 용호우리농마을 양연모씨 등 네명의 농민을 찾았다.
10월의 끝자락을 붙잡은 늦가을 풍경은 영혼의 소리에 취하게 하는 화원의 뒤안길처럼 포근하다. 목포행 호남선 열차 차창에 5시간 내내 비친 10월의 가을은 산허리와 들녘 그리고 길가에 온통 꽃으로 주단을 깔아 놓은 듯했다.
가을의 취기에서 깨자 ‘학교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함평천지(咸平天地).’ 호남가(湖南歌) 첫머리에 나오는 말대로 호남에서 “다 함께 평안한 세상에 사는 동리”라고 자랑하는 곳이 여기다.
전남 함평 월호리 용호우리농마을은 10농가가 1만3000평 농지에 오리농법으로 무농약쌀을 생산해 우리농촌살리기운동 광주대교구본부(이하 광주 우리농)를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조그마한 농촌 마을이다.
이곳에 무농약 유기농법이 들어온 것은 1993년 광주 우리농의 권유로 당시 학다리 석정공소 회장이던 양연모씨를 비롯해 양병식(바오로)·김금숙(레지나)·서영자씨가 시험적으로 무농약 야채를 생산하면서부터다.
군생활 외에는 고향인 학다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토박이인 양 회장은 농업이 경시되는 상황에서 땀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용기와 힘을 잃지 않고 농사일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게끔 할 수 있는 일에 고민해 왔다. 선교사 없이 공소를 책임 맡았던 그는 고향 주민들에게 농사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 곧 전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 회장은 용소마을에서 함께 살던 신자 4가구를 찾아가 “땅을 살리는 것이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설득해 유기농을 시작했다.
양 회장과 3명의 용호마을 신자들은 재배한 무농약 배추와 무 시금치 등이 주 3회씩 광주 소비자들에게 직거래로 팔려나가자 논농사를 해도 판로가 확보된 만큼 걱정없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이들 넷은 매주 화요일 저녁 공소에 모여 무농약 농사 에 대해 공부를 했다.
광주 우리농이 제공한 각종 무농약 농사와 유기농 자료를 토대로 공부를 하고 유기농 교육을 하는 곳을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다니며 이수한 이들은 점차 생명농업 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유지하면서 생명을 책임지는 농업인으로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생명농업 실천에 의기투합한 이들 넷은 94년에 열무 풋고추 쪽파 마늘 등 식단에 오르는 거의 모든 채소들을 재배했고 그 기술을 토대로 96년에는 양 회장이 무농약 논농사를 시험적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완전히 실패를 했습니다. 수십년 화학비료에 길들어진 논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지질이 바뀌겠습니까. 생산량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50이상 줄고 상품성도 떨어졌죠. 하지만 광주 우리농 소비자들이 저희들을 믿고 손해 입은 만큼 보존해주자 주민들도 점차 저희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양 회장은 실패를 거울 삼아 다음해 넷이서 함께 우렁이 농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렁이가 병충해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농사를 짓기 위해 빛과 바람과 비를 주시듯이 지혜를 주실 것”이라고 믿고 98년 무농약 오리농법 이라는 새로운 농법을 시도했다.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오리가 병충해를 거의 완벽하게 없애 주었다. 물론 작황도 풍작이었다.
오리농법이 성공을 거두자 농가 주민들이 하나둘씩 무농약 농사를 시작했고 윤공희 대주교와 직거래 소비자들이 수차례 마을을 직접 방문해 전량 수매계약을 맺자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군 농가로 삽시간에 퍼졌다.
또 양연모 회장이 앞장서서 98년 8월 함평군 환경농업협의회를 만들어 군 일대를 돌며 친환경 농업운동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금세 환경농업협의회 회원이 100명으로 불어났고 군내 엄다면과 손불면에서 환경농업을 하겠다며 양 회장에게 광주 우리농과의 직거래를 요청해 왔다.
무농약 재배 면적도 늘었다. 1997년 양연모씨 혼자 1800평 농사를 지어 80㎏ 정곡 25가마를 생산한데 반해 금년에는 30농가가 참여 3500평에 오리농법 농사를 지어 약 450가마를 생산할 예정이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이들 넷은 공통된 습관이 생겼다. 화살기도처럼 틈만 나면 “농민들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아 용기와 힘을 잃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농민의 기도 를 외는 것이었다.
친환경 농사가 군내로 확대되고 도시 소비자들이 무농약 농지를 대거 찾아오자 함평군(군수 이석형 토마스 아퀴나스)은 농업이 71를 차지하는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 농업의 질적 향상을 통한 차별화로 소득을 증대하고 지역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친환경농업군 조성 사업을 98년부터 착수했다.
친환경농업과 생태학습관광의 메카 푸른 함평 이란 슬로건을 내건 함평군은 98 99년 2년에 걸쳐 1320명에게 유기농법을 교육했고 금년에는 자연농업 회원 100여명을 충북 괴산 자연농업학교에 위탁교육을 시켜 정예 친환경농민으로 양성하고 있다.
함평군은 금년에만 군 총예산 728억원 중 28에 해당하는 204억원을 친환경농업 사업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그 결과 함평군은 금년 6월 정부로부터 2000년 환경경영대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함평군에서 유명인이 되어버린 양연모씨를 비롯한 4명의 친환경농민들은 “유기농을 한 것 외에는 떳떳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며 “소비자의 건강과 환경 생명을 생각하는 농민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 땅이 되살아나고 생명이 건강해지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