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본당/공동체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김정 교수의 동유럽 문화기행 - 폴란드 크라코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폴란드는 두가지 사실 때문에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나라다.

하나는 영국으로 귀화해서 영어로 작품을 쓴 어둡고 깊은 내면의 작가 조셉 콘라드의 고국이라는 이유와 또 다른 하나는 그곳이 역사의 가파른 여러 고비에도 불구하고 오랜 동안 가톨릭 전통을 고수해 온 교황의 조국이라는 점 때문이다.

콘라드의 작품을 통해 나에게 전해진 슬픈 역사의 나라 라는 치우친 인식은 활기 넘치는 크라코프의 광장의 문화 를 보고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도착 직후 비 내리는 어두운 거리를 보면서 느꼈던 우울이 다음 날 비 걷힌 후 중앙시장 광장의 밝은 생기로 수정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크라코프행 기차는 30년 전의 호남선 완행열차와 흡사했다. 차창 밖으로 너무나 황량하고 복구 불능으로 보이는 사회주의의 잔재를 한참 본 뒤 비가 쏟아지는 크라코프에 내렸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비는 구성지게 내려 구 시가지 입구의 노천 카페에 앉아 날이 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광장을 한겹 벗어난 그 시가지의 고만고만한 상점들은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자본주의의 억지 활기를 드러내고 있었고 한쪽 옆으로는 기다란 택시의 행렬이 서 있었다. 어쩐지 눈에 익은 모습이다 싶어 유심히 보니 거의 모두가 한국의 대우차들로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반대쪽에 있는 꽤 큰 성당의 어두 침침한 문에서 이제 막 미사가 끝났는지 무덤덤한 표정의 사람들이 계속 걸어 나오고 있었다. 주일이 아닌 평일 미사에 온 사람들. 이들에게 종교는 구원을 약속하는 위안일까? 아니면 그냥 일상의 습관일까? 그 사람들 앞을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가죽 재킷의 젊은이에게는 교회가 거리의 풍경으로만 비쳐질까? 아직도 간편화되지 않은 옛날식 수녀복의 긴 자락을 빗물에 적시며 가는 수녀님은 그들에게 전 시대의 유물로 남은 것일까?

그치지 않는 비에 핑계를 대고 한참을 투정하듯 자문자답하는 사이 어느덧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자 중앙시장 광장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행렬이 이어지고 접혔던 노천의 의자들이 펴지면서 거짓말처럼 광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2000년 문화도시 중의 하나인 크라코프는 중세 광장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두번의 세계대전의 전화가 비켜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서양의 도시 어디에서나 광장은 민중문화의 중심지였다. 왕이나 귀족의 주거지와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교회 시장 공공기관 등의 구조물이 광장의 테두리로 자리잡으면 그 내용물인 종교 상업 행정이 그곳을 만남과 교류와 소통의 장소로 아우르게 된다.

자연히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축제의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대와 상황이 변한 지금 그 광장의 역할을 그대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임에도 크라코프는 이전의 모습을 과히 축내지 않고 그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광장 한쪽으로는 14세기에 지어진 길이 100m가 넘는 옛 직물거래소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미를 뽐내며 서있고 그 맞은편에는 두개의 서로 다른 모양의 뾰족탑을 이고 있는 성 마리아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옆으로는 옛 시청의 탑과 역사 박물관 등이 들며 날며 자리잡고 수많은 노천카페와 음식점들이 빙 둘러선 채 광장을 안온하게 감싸안고 있다.
광장 위쪽으로는 탄성이 나올 만큼 고운 색깔의 꽃으로 가득한 꽃시장까지 있어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직물거래소 아래층에는 호박 목공예품 등을 파는 특산물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그 물건들은 관광객을 위해 눈가림한 것들이 아니어서 진솔한 맛이 느껴졌다.
광장의 노천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광장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늙고 기운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소심하게 다가와 애잔한 바이올린 소품 몇곡을 연주하자 그 할아버지를 밀어내듯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활기차게 금관악기 삼중주를 했고 그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쪽에서 떼를 지어 스페인의 아카펠라 그룹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늙은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서 관광 겸 돈벌이를 나온 여행객인 듯했다. 정작 그곳 태생인 할아버지는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같아 보였지만 젊은이들의 기세에 눌려 손을 내밀지도 못한 채 주춤거리는 모습이 마치 늙고 지친 폴란드의 이면을 마주한 듯 마음이 편치 않았다.
광장 한쪽 끝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야기에오 대학은 한때 코페르니쿠스가 적을 두었던 곳으로 15세기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학 옆 미술관에서 마침 전시중인 로댕의 조각전을 보고 다시 광장으로 들어서니 사방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따로 정해 놓은 칸막이나 경계 표시가 없는데도 광장 여기저기서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여러 갈래의 축제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에도 한국의 길일(吉日)과 같은 것이 있는지 결혼식을 치른 젊은이를 세쌍이나 만날 수 있었다. 광장에 있는 관광용 마차를 타고 광장 주위를 행복에 겨워 도는 신혼부부에게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미사 시간에 맞춰 성 마리아 성당으로 들어서자 마침 혼인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고정 신자수가 꽤 되는지 성당 안은 관광지의 들뜬 분위기 없이 경건했다. 교회의 힘이 약화된 다른 곳에 비해 이곳 교회는 관광용의 볼거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의 집 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관광객과 함께 또 누구든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혼인미사를 같이 드리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 종교가 생활과 유리되지 않은 채 광장 안에 살아 있는 모습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이웃 나라들의 교회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해질 무렵 축포와 함께 광장 곳곳에서는 여러가지 공연이 벌어졌다. 스페인의 바스크족이 하던 기다란 나무로 키를 높이고 추는 족마춤 또 다른 쪽에서는 피에로 복장을 한 판토마임 또 이쪽에서는 의상을 차려 입고 대사를 읊으면서 하는 야외극.

이런 다양한 볼거리들이 무리 없이 한광장 안에서 어우러지는 광경을 보면서 얼마 전까지 가졌던 선입견과 회의는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광장은 살아 있었다. 가볍고 얇은 문화상품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나눔과 교류의 문화로 살아 있었다.

광장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시장도 있어야 하고 볼거리도 있어야 하고 행정적 보살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라코프의 광장에는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폴란드의 교회가 그 뒷심이 되어주고 있었다. 열에 들뜬 상업주의나 가벼운 이국문화가 널뛰는 속에서도 광장의 사람들과 유리되지 않은 교회가 균형을 잡는 무게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보이지 않는 그 구심점이 이 크라코프의 광장을 오늘도 살아있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 싶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0-10-2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5

시편 81장 17절
나는 내 백성에게 기름진 참밀을 먹게 하고, 바위의 꿀로 그들을 배부르게 하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