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나 죽음의 문턱에서 저를 일으켜 세워주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야말로 덤으로 사는 인생 제가 체험한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 소중한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죽음을 넘나드는 수차례의 대수술과 잦은 병마로 인해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정한수(40·프란치스코)씨. 오늘도 전국 각지의 성당으로 다리품을 팔며 ‘목이 터져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그의 직업은 ‘평신도 선교사’다.
그의 수첩은 다양한 강의 일정으로 빽빽하다. 월요일은 인천 심곡동본당 성서강의 수요일은 주안5동성당의 교리교육 금요일은 마장동성당 견진 강의…. 지난 십수년간 평신도 선교사로 일해오면서 명강사로 소문난 그가 의뢰받는 강의는 한달 평균 15건 내외. 그는 하루일과를 대부분 강의와 교안 작성으로 보낸다. 교안을 준비하면서 몇 시간씩 기도하는 것은 예삿일. 그렇게 정성들여 만든 교안을 들고 강단에 서기 전에 항상 이렇게 기도한다.
“내가 아닌 주님이 하시는 이 강의 듣는 이들에게 영육간의 피와 살이 되게 하소서.”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 말고는 다른 생업을 가지지 않은 전업 선교사다. 얼마되지 않는 강사료를 가지고 네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가깝다. 최저 생계비도 안되는 수입에 저축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직업 아닌 직업 평신도 선교사. 그는 왜 돈 되는 일을 마다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인 이 일에 나섰을까?
“20여 년 전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뇌암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남들이 뭐라 웃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때 주님을 뵙고 ‘내 고통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그 분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수시로 찾아오는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고통 속에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며 이제 내 목숨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느님께서 심어 주셨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정씨는 87년 가톨릭 교리신학원을 졸업하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이 체험한 ‘참 생명이신 하느님’을 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잠시 직장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곧 그만두고 지금은 이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턱없는 수입으로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가는 부인에게 늘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 일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씨에게는 큰 축복이다. 그는 특히 자신의 교육을 통해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을 볼 때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내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신자들이 하느님을 만나고 그 분의 사랑에 눈뜰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를 도구로 사용해 이런 은총을 주시는 그 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따름입니다.”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영적으로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교회가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으로 똘똘 뭉쳐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전파하는 성숙한 신앙과 선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직접 체험케 하는 신자 재교육은 신앙의 내실화를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평신도들도 성직자 수도자들과 함께 교회의 주역으로 나서서 그리스도를 따르고 증거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회가 온다면 중국에서 선교사의 꿈을 펼쳐보고 싶다는 정씨. 세속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평신도 선교사의 생활이지만 하느님 사랑에 듬뿍 빠져 그 분을 증거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그는 분명 ‘행복한 사나이’이다.【남정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