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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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임없는 포격속 기도로 두려움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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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 콩고민주공화국(DRC)에서 선교중인 권영희(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수녀가 지난 96년 가을에 이어 또 다시 해외 선교지의 급박한 상황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 6월에 쓴 이 편지는 현지의 열악한 사정으로 인편을 통해 9월 초에야 한국에 도착했다. 지금도 수시로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콩고에서 사선 을 넘나들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현지인들과 생사고락의 삶을 함께 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권 수녀의 현지 서한을 상·하 2회에 걸쳐 정리 소개한다. 편집자

5월5일. 얼마 동안 조용했던 콩고 제2도시 키산가니(Kisangani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유명)에서 전투가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반란군인 콩고민주화운동(RCD)이 점령중이던 이 도시에 우간다군과 르완다군이 들어와 충돌하면서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앞서 4월25일부터 사흘간 한자리에 모여 총회 준비모임을 가졌던 콩고내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의 모든 공동체 수도자들은 전쟁 때문에 선교지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게 됐다. 교통수단은 군용비행기와 카누의 일종인 피로구(
irogue)뿐이어서 원래의 선교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헤아릴 수 없는 고초를 예고했다. 르완다 국경 근처 붐바(Bumba) 공동체는 조그마한 피로그 안에서 사흘 동안 살면서 식사와 잠을 해결해야 했다. 또 키산가니에서 수백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푸니아(Punia) 공동체는 키산가니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에 직접 푸니아로 돌아갈 수 없어 르완다를 거쳐 군용비행기를 이용하려 했지만 단 1명만이 허가돼 교사 수녀 혼자서만 수일간의 체류를 거쳐 한달 만에 현지로 돌아갔다.

우리도 우여곡절 끝에 키산가니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키산가니는 이미 5일 전투가 시작되면서 두 동강이로 갈라져 버린 상태였다. 강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르완다군이 왼쪽은 우간다군이 각각 차지하고 다리 통행을 막아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우간다군쪽에 식량을 전하러 갔던 우리 수도회의 마리아 수녀는 16일간 억류돼야 했다.

우리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는 마리아 수녀를 찾기 위해 현지 교회 책임자를 만났지만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래서 르완다군이나 우간다군을 찾아갔지만 역시 거절당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매달릴 곳은 UN뿐. 그래서 긴급회의를 가진 끝에 UN 책임자를 매일 찾아갔다. 10만명에 이르는 현지인들 또한 우간다군쪽에 억류된 가족들의 생사를 몰라 울먹이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1주 2주 지칠 줄 모르고 UN 관계자들을 찾아가 “우리는 가족들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계속해서 다리를 건너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던 중 UN의 중재로 다리 통과가 드디어 허용됐다. 그래서 10만명의 주민들이 서로 양쪽을 오갈 수 있게 됐고 마리아 수녀도 이들과 함께 공동체로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키갈리(Kigali)에서 개최된 참사회의에 참석했던 베르나데트 수녀는 이 전투로 인해 키산가니와 소식이 두절됐다. 키산가니에 있는 우리 공동체와 통하는 모든 길이 차단돼 키갈리에 머물던 베르나데트 수녀는 UN의 도움으로 한달 만에 키산가니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간은 긴장 속에서도 잠시 고요했다. 그러나 6월5일 전쟁이 다시 터졌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다 못해 시내에 식량을 사러 나갔던 우리는 빗발 같은 총알세례를 받아야 했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혼비백산해 흩어졌고 대포와 총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아이들과 신체 장애인들은 빨리 도망가지 못해 멍하니 서있었고 몸이 성한 사람들은 우리 차에 매달렸다. 울부짖는 아이들을 차에 싣고 장애인들과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들을 싣고 계속 달려야만 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계속 달려 무사히 공동체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모두 혼비백산해 집으로 돌아가고 식량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이들은 오늘 무엇을 먹을까. 이렇게 전쟁이 계속되면 아이들은 무서워서 식사를 받으러 오지도 못할텐데…. 답답하기만 했다.

전투가 다시 시작되자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던 마리아 수녀와 우리 수녀회의 청원자 1명이 서둘러 병원과 가까운 우리 공동체로 피란을 왔다. 병원에서 일하는 동정성모회 수녀와 우리 수녀회 프란씬 수녀도 함께 피란했다. 밤새도록 대포소리가 끊임없이 우리 집을 뒤흔들고 밤낮없이 서로 공격했다.

이곳에서 함께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수녀회의 두 공동체는 서로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지 않은 데도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우리 수녀회 수도자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많은 포탄이 떨어져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속출 병원에 실려갔다고 하는데 수녀회 소식은 알 수가 없다. 마리아 수녀는 약이 없어 계속 고통에 처해 있다. 밤낮없이 공격이라니.

하느님 어쩌면 오늘이 저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겁내지 않고 의연하게 대포소리와 총소리를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 공동체에 피란을 온 수녀들과 다른 공동체의 수도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얼마 뒤 우리 공동체 주변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웃들은 모두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긴 행렬을 이루어 탈출했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지금 상황으로는 어느 곳도 안전한 데가 없는데. 이들은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수 없이 여권과 공동체의 재산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공동체 수녀들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 살아남게 될 수도자가 각종 문서와 재산 서류를 챙기도록 부탁했다. 모두들 용기가 꺾여 방으로 돌아갔다.

그때 갑자기 총알이 지붕에 떨어지고 조명탄에 밤이 낮처럼 밝아졌다. 나는 수녀들에게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새벽 4시 기도실에 갔을 때 벌써 한 수도자는 기도실에 엎드린 채 기도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떨어진 포탄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까. 기도한 뒤 용기를 얻어 성당에 갔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다. 주교좌 대성당에는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고 대성당 주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사제들도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성직자들을 설득해 우리 수녀원 기도실에서 사제 4명 수도자 5명이 미사를 봉헌했다. 모두들 울먹이며 성 목요일 만찬 같은 미사를 드렸다. 이날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 모두 하나되게 해달라는 것. 미사중 총알이 바로 지붕 위에 떨어지자 모두들 침묵했다. 애절한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포탄을 멎게 해주소서. 전쟁이 끝나게 해주소서. 그러나 모든 것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시내로 들어갈 수 없어서 정확한 희생자 수는 파악할 수가 없다. 하지만 떨어진 포탄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니 희생자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프란씬 수녀는 포탄 소리에도 불구하고 약을 공급하기 위해 병원에 일하러 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마치 죽은 도시 같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도 없고 가난한 이들의 구걸소리도 없다. 전기도 끊겼고 마실 물도 없는 최악의 여건. 매일매일 먹어야 할 식량도 점차 줄고 있다.

주님 그러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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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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