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군종교구 홍보국장 손용환(화랑대본당 주임)신부가 군사목을 하면서 느낀 점을 일기형식으로 쓴 글이다. 군사목의 현장과 군종신부의 애환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이 일기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O월OO일 목요일
주님 당신께서 최후만찬을 하시던 밤입니다. 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던 밤입니다. 그토록 중요한 밤 종교행사에 신자는 8명이 참석하고 신부는 15명이 참석했습니다. 순간 캄캄하더군요. 신자없는 군대에서 무얼 해야 할까? 막막하더군요. 주님 길 좀 밝혀주세요..
O월OO일 토요일
주님 오늘은 추석입니다. 신자들이 사다 준 송편과 음식을 한 꾸러미 싸가지고 병사들에게 주려고 대대 미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공소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군종병이 달려오더군요. “신부님 죄송합니다. 추석이라 아침에 술 한잔 먹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지금 일어났습니다. 지금 곧 아이들을 불러모으겠습니다.” 그러더니 잽싸게 내무반에 달려가서 요놈 저놈 불러모아 오더군요. 그렇게 불러모은 장병들이 불교 신자들까지 포함해서 열 명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송편과 음식을 나누었죠. 그리고 성가를 부르며 당신 말씀을 전해주었어요. 주님 미사는 드리지 않았지만 떡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었다니까요.
O월OO일 일요일
주님 길을 몰라 헤매며 대대 미사를 갔습니다. 도착하니 두 명의 신자만이 앉아있더군요. 그 중 한명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 한 시간을 걸어왔다는군요. 그것이 고마워 그를 초소까지 태워다주었죠. 그가 내릴 때 초코파이 한 상자를 주었는데 더 있다면 더 주고 싶더군요..
O월OO일 수요일
주님 오늘은 훈련병이 미사에 배로 참석했어요. 왠지 아세요? 미사 후에 콜라를 준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리고 병사들이 개신교에 많이 가는 이유를 알았어요. 개신교에서는 빵에다가 우유까지 준대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어요. 다음에는 뭘 가지고 올까? 아이들은 한결같이 “더 큰 빵이요” 라고 대답하더군요. 주님 혹시 당신보다 빵이 더 위대한 건 아닙니까?
O월OO일 금요일
주님! 용준이랑 악수를 했습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이등병 때였죠. 그는 문제사병으로 성당에 작업하러 왔습니다. 석달 동안 사제관을 지으면서 함께 일하고 이야기하며 지내던 그가 일병이 되자 세례를 받더군요. 그리고 자대에서도 일 잘한다고 사랑을 받구요. 그가 상병이 되었을 때에는 어엿한 대대 천주교 군종병이 되었고 병장이 된 지금은 여섯 명이나 입교시켜 세례를 받게 하더군요. 주님! 한 영혼이라도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죠?
O월OO일 수요일
주님! 오늘도 106명을 세례주었습니다. 물을 붓는데 팔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그래도 젊은이들이 당신 대전에서 새로이 태어나니까 가슴 뿌듯하더군요. 찰고시간에 “너 왜 영세하려고 하냐?”고 했더니 어떤 놈이 “신부님이 좋아서요” 하더군요. 내가 그에게 한 것은 등 한번 두들겨 주면서 “힘들지?” 라고 말한 것뿐인데요. 주님 그런 순수한 영혼이 아름답습니다.
주님 찰고시간에 또 골 때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차 합격 2차 합격 3차 합격을 시키고 106명 중 20여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시간도 없고 해서 “팔굽혀 펴기 50번 하고 세례받을 놈 나와” 했더니 세 명만 빼고 다 나오더군요. 팔굽혀 펴기를 한 그들에게 제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이렇게 어렵게 영세하는 거니까 배신하지마. 신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야” 라고 말했어요. 주님! 맞는 말이죠?
O월OO일 일요일
주님 군인주일입니다. 솔직히 군인주일이 싫습니다. 왠지 아세요? 군인주일 강론을 하기 위해 민간본당에 가면 거지가 된 느낌이 들어서요. 또 군인주일에 전방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은 공소예절을 하게 하고 저는 도심지 큰 본당에서 미사와 모금을 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군 선교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주님 군 선교를 하는 데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도록 힘 좀 실어주세요. 교회의 미래를 위해 전방에서 고생하는 군종 신부에게 고생한다고 말 한마디 던져 줄 사람 좀 보내주세요. 적어도 군인주일만이라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후방에서 고생하는 국민의 아들 딸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군인주일이 군종 신부와 군인들을 기죽게 하는 날이 아니라 기 살리는 날이 되게 팍팍 좀 밀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