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금이 21세기가 맞는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최첨단 현대문명의 이식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는 곳이 동유럽이다. 현대문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가쁜 숨을 쉬며 새로운 도전에 응하고 있는 동유럽의 문화를 감상하는 김정(소피아)가톨릭대 교수의 동유럽 문화기행 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세계화라는 역설 베를린 편-
주일마다 성당을 오가며 지나는 서울 경찰청 앞에는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 라는 커다란 표어가 건물 정면에 압도하듯 걸려있다. 이 빳빳한 글씨체의 표어를 바라보면서 어떤 식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미래가 보일지 여러번 머리를 갸우뚱해 보았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몇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 변화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의 속도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지 따라잡기가 난감할 지경이다. 이 난감함은 지난 여름 내내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나를 놓아주지 않던 당혹감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여행의 끝 무렵에 가서야 이 모든 것들을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 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가진 기준으로 성급하게 좋다 나쁘다 로만 판단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판단하기 전에 이해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빨리 이해가 되지 않는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느꼈던 혼란과 당혹감은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맺고 있는 역설적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풀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설(
aradox) 즉 초논리 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는 점을 수긍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고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존재에게 우리를 의탁하고 헌신하는 우리의 신앙이야말로 가장 큰 역설이 아닐는지.
통일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동유럽으로 들어가면서 똑같이 느끼는 것은 세계화 라는 것은 거칠게 그리고 무섭게 빨리 자본주의화하는 어떤 것으로 그 나라의 고유성을 지켜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나마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종교가 있던 자리에 이데올로기라는 무서운 종교가 들어앉더니 이제는 거대한 물신주의 인터넷 경제논리만이 절대 군주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울에서 베를린 사이의 직항로가 없어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 베를린까지 기차로 여행하기로 했다. 잔뜩 흐린 날씨의 유럽의 다른 중소도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들어 방을 잡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여기 저기 식당을 기웃거리며 마땅한 데를 찾다가 저쪽으로 보이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붉은색 간판을 보자 슬그머니 이 도시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또 미국식 인스턴트 문화의 부박함을 혐오하면서도 낯선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익숙한 표지. 이렇게 미국의 맥도널드는 싫든 좋든 문명의 코드로 자리를 잡고 나를 이미 그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언어도 관습도 전혀 달라 서로 통하지 않는 장소에서 맥도널드는 붉은 바탕에 노란 M자 표지 하나만으로 사람들을 묶어 거느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괴테 생가를 찾아가 보았다. 생가가 모두 그렇듯이 후대 사람들의 조작이 느껴지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괴테가 그린 그림 하나를 사 들고 베를린행 열차를 탔다.
굳이 베를린을 이번 여행의 출발지로 삼은 의도는 그곳이 통독의 관문이었다는 이유에 덧붙여 동유럽으로 가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단의 아픔을 우리보다 앞서 끊어내고자 했던 곳에서 여행을 시작하고 또 마감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던 터였다.
끊임없이 비가 질척이는 베를린은 기억과 욕구가 음산하게 가라앉은 채 내연의 불길을 뿜어 올리고 있는 곳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기억이 좋은 추억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는 것이며 욕구가 삶의 원동력일 수도 있고 파괴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베를린은 이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역설적인 도시였다. 인간이 서로 다른 욕구와 기억을 가진 다른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기억과 욕구만이 유효하다고 고함을 내지른 히틀러의 나라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과 죽음으로 내몬 나라의 상흔이 여기 저기에 널려있었다.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는 전쟁으로 폭격을 맞은 교회를 그대로 둔 채 바로 그 옆에 현대식 새 교회를 세워 두 건물을 대비시켜 놓은 데가 있다.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로 향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 역설적 자기과시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쩐 연유인지 알 수 없었다. 멀쩡한 건물을 일본의 잔재라는 이유만으로 두들겨 부숴버린 나라 사람이 갖는 자격지심인지 아니면 돈 많은 나라인 독일이 괜히 선심 쓰듯 보여주는 위선이 느껴져 그런 건지도 몰랐다.
베를린은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유럽 각지에서 오는 열차를 맞을 새 중앙역 새 국제공항에서부터 새 정부청사 등 통일된 독일의 새로운 수도로서의 면모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붓고 있었다. 과거의 기억은 점차 묻어버리고 미래를 향한 힘찬 욕구만이 경제논리와 맞물려 명분을 얻고 있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는 또 다른 독일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베를린 영화제가 열렸던 쏘니 멀티미디어센터는 저 유명한 베를린 필 하우스 바로 옆에 세워져 이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화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 일본의 쏘니 자본이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라는 최첨단 골리앗을 동원해 그 위용을 뽐내며 베를린의 중심지에서 전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센터 안의 복합영상 공간에서 독일어 자막이 없는 미국 영화를 편안히 뒤로 드러누워 바라보면서 과연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베를린의 젊은이들은 동베를린의 황량한 공장지대에 새 둥지를 틀고 활발한 예술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디든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활력이 넘치고 농익지는 않았으되 신선한 풋내가 사람들을 희망적으로 만드는가 보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유리와 강철로 지어진 최첨단 구조물의 웅장함에서보다는 허물어져 가는 창고에서 뚝딱거리며 만들어 전시해 놓은 예술작품들에서 훨씬 더 밝은 미래를 본 것은 혼자만의 편향된 시각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몇십년 후 아니면 100년 후 투명하고 비정해 보이는 이 거대한 강철 구조물들은 고딕이나 바로크 양식의 과거 건축물들을 제치고 틀림없이 관광객들의 눈요기 거리가 될 것이다. 국적에 상관없는 예술가의 설계에 국적에 상관없는 첨단의 건축자재를 쓰고 국적에 상관없는 자본 유치로 명실공히 세계화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즐비한 통일 독일의 새 수도 베를린.
파괴되고 망가진 분단국 그 속에서 또 다시 동서로 분단돼 장벽을 안고 있었던 베를린은 과거의 상처를 더 할 수 없이 좋은 천혜의 이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역설의 도시였다. 어느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동시에 이렇게 대규모로 이렇게 돈을 들여 건설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