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들이 송환돼 북에서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듯이 납북 억류 중인 454명도 하루 속히 가족 품으로 돌아와 명절을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추석이 아버지와 헤어져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길 바라는 최우영(31)씨. 납북자 가족 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최씨의 아버지는 13년 전 백령도 부근 공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피납된 동진 27호 어로장 최종석(55)씨다.
아버지가 피랍될 당시 여고 1년생이었던 그녀는 4년 전 결혼을 해 이제 한 가정의 안주인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도 보지 못한 채 북녘 땅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더욱이 사상이나 이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관리소)에 계신다고 하니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납북된 최종석씨는 현재 평남 개천 14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돼 있다. 지난해 1월 국가정보원의 납북 생존자 명단 발표를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탈북자에 따르면 아버지가 계신 14호 관리소가 가장 혹독한 정치범수용소라고 합니다. 그 곳은 시신도 나올 수 없는 곳이래요. 제 아버지는 민간인 어부로 강제 납북됐는데 왜 그런 곳에서 가혹한 삶을 사셔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1987년 1월15일에 피랍된 동진 27호 선원 12명은 또 다른 의미에서 냉전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분단의 벽으로 인해 갈라진 이산 가족이나 또는 자신의 이념 때문에 남으로 내려왔다가 붙잡혀 영어의 생활을 한 후 이번에 북의 가족품으로 되돌아간 장기수들과 달리 이들은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어부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납북된 이후 최씨를 비롯한 납북자 가족들은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북한에서도 민간 어선이므로 간단한 조사를 마치고 남한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발표했었다. “아버지께서 구정 전에는 돌아오시리라고 믿고 어머니와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동생과 함께 설 준비를 했었어요.”
그러나 그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해 2월8일 탈북한 김만철씨 일가가 남한에 들어오면서였다. 북한에서는 동진호 선원 12명과 김만철씨 가족을 교환하자고 우리 정부에 제의했으나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동진호 선장 김순근씨와 어로장인 최종선씨를 간첩으로 몰아 정치범수용소에 가둬 버린 것이다. 나머지 선원들도 돌아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 납북된 남한 사람들은 모두 454명(국정원 발표). 그들 대부분은 동진호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어부들이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납북자 문제는 정부는 물론 인권 통일운동 단체들로부터도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가장 인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임에도 항상 체제를 앞세운 정치 논리에 의해 판단되어온 것이 이들 납북자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서러움이었다.
최씨의 아버지와 함께 납북된 동진호 선원 강희근씨의 모친 김삼례(75)씨는 아들이 피랍된 이후 생과부로 늙을 며느리가 불쌍해 재가시킨 후 세살배기였던 손자를 지금껏 홀로 키워오고 있다.
72년 2월4일 서해안 대청도 근해에서 어로 작업중 납북된 안영호·이홍섭씨 가족은 이씨의 생사 확인만이라도 하고자 통일부나 적십자사 심지어 민간단체까지 18년 동안 문을 두드렸지만 외면만 당해 왔다.
최씨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졸지에 가족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 김태주씨는 집을 팔아 혼자 식당일을 하면서 위궤양 고혈압 당뇨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는 등 온 몸이 망가졌다.
“가족들에게 충실한 가장이셨습니다. 고기잡이를 떠나서도 바다 위에서 매일 집에 안부 전화를 했고 가족 모두에게 각각의 편지를 써 보낼 만큼 자상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충격으로 3개월을 꼬박 앓아 누우셨고 아버지가 쉽게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신 후 아버지에 대한 말문을 닫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최씨는 국제사면위원회 등 각 인권단체에 편지를 썼다. 또 통일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호소하고 절규할수록 북의 가족이 돌아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탄원서를 보내기 시작한 지 12년 만인 지난해에 비로소 국정원은 아버지를 비롯한 납북자들의 생사를 확인해 주었다. 용기가 생긴 최씨는 금년 2월28일 납북자 가족 모임 을 결성했다.
최씨를 비롯한 납북자 가족들은 8·15 이산가족 상봉에 이어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난 8월24일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김대중 대통령께 요청합니다. 직접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납북자 송환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뤄주십시오.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을 즉시 해 주시고 자유의사에 따라 납북자들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최씨는 또 며칠 후 어머니 김태주(51)씨와 함께 북으로 송환되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찾았다.
주소 대신 1987년 1월27일 동진 27호 최종석 이라고 쓴 편지를 북으로 가는 신인영씨에게 전해 주면서 모녀는 “가족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최씨를 비롯한 납북자 가족들은 북에 억류중인 가족들이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그리며 이번 추석이 헤어져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 되기를 빌었다.
평소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 가족품에 돌아오면 국내의 모든 술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는 최씨는 아버지께 보내는 추석 편지를 썼다.
“아버지! 저는 어부의 딸 입니다.
아버지가 저희들을 위해 배를 타셨듯이 이젠 제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배를 띄웁니다. 그 배는 항해를 하다가 해풍을 만나기도 하고 어쩌면 산산이 부서져 바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저는 아버지를 위한 항해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 조금만 더 견디세요. 하루 빨리 모셔와서 성할 곳 하나 없는 아버지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제게 있는 모든 시간을 아버지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