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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비오 9세 요한 23세 교황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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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 9세:1792년 5월13일 이탈리아의 아드리아 해안 마을 세니갈리아의 서민 가정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 이름은 조반니 마리아 마스터가 페레티. 1819년 사제로 서품돼 칠레와 페루에서 교황청 외교관을 지냈으며 1827년에 스폴레토의 대주교로 서임됐다.

1846년 6월16일 54세의 나이로 교황에 선출됐으며 이름을 비오 9세로 정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에서 근대적인 정치적 철학적 사조가 득세하면서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령(교황이 관할하던 토지)의 반환을 요구했고 교황은 이를 거부하다 2년간 도피하기도 했다.

1854년에는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리를 믿을 교리로 선포 대중들의 마리아 신심을 고취시켰다. 비오 9세는 1869년에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선언하면서 그리스도교 계시의 근본적인 가치를 재강조했다. 1878년 2월7일에 선종했다. 비오 9세는 1700년 이후 최연소 교황이었으며 베드로 사도 이후 가장 오랜 기간(32년) 교황직을 수행했다.


▲요한 23세:1881년 11월25일 이탈리아의 북부 소토 일 몬테에서 소작농의 13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1893년 소신학교에 들어가 1904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베르가모 주교의 비서로 생활했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종신부로 활동했다.

1925년에 아레오폴리스의 명의 대주교로 임명되면서 불가리아에 교황 시찰관으로 파견됐으며 1930년대에는 터키와 그리스의 교황 사절로 활동했다. 이런 활동으로 요한 23세는 동방 가톨릭 및 정교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게 됐다. 요한 23세는 1953년까지 프랑스 교황대사와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의 상임 옵서버를 지내는 등 줄곧 외교가에서 활동하다가 1953년 추기경에 임명됐다.

1958년 10월28일 선임자 비오 12세의 후임으로 교황에 피선됐으며 요한 23세로 이름을 정했다. 비오 9세와는 달리 200년 만에 최고령 교황이었다. 1960년 근세 이후의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로마의 시민들과 접촉하기 시작했으며 로마교구 시노드를 소집하기도 했다.

1962년 10월11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으며 공의회 회기중인 1963년 6월3일 암으로 선종했다.

요한 23세는 5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교황직을 수행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 교회의 현대화와 쇄신에 이정표를 놓았고 특히 그리스도교 일치와 타종교와의 대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또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3년에는 어머니요 스승 지상의 평화 같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담은 회칙을 발표 세계 평화와 정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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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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