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죽은 줄로만 알았던 너를 만나다니….
아직도 꿈만 같다. 하느님이 너 영원이를 만나게 해주려고 이 나이까지 나를 붙들어주셨나 보다. 다시 너를 위해 감사미사를 봉헌해야겠구나.
그런데 왜 이다지 내 마음이 아프고 허전한지 모르겠다. 50년 만의 상봉의 기쁨 그 시간을 붙잡아둘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까. 인간적인 욕심은 끝이 없구나.
네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내 나이 탓인지 사실 잘 몰라봤다. 이 어미의 마음 속에는 소년 티를 채 벗지 못한 50년 전의 아들 모습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데 말이다.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진 그리고 까맣게 그을린 네 얼굴은 생소했어. 찬찬히 훑어보니 옛날 네 모습이 나오더구나. 큰 며느리와 손주들의 얼굴도 사진으로라도 보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하지만 실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구나.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보고싶고.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50년 전 그 때는 모두가 가난하게 살았지만 우리 집은 더 가난해 굶는 날이 많았다는 것을 너도 기억하지. 맏이인 너는 집안 형편 때문에 배우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다녔었고 그러다가 의용군에 징발되면서 소식이 영영 끊어졌어. 정말 죽은 줄만 알았단다.
그런데 경제학 박사에 대학교수로 어미 앞에 나타나다니. 이 어미를 생각하며 하루 2시간밖에 잠을 안자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니 혼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네가 장하다는 생각보다 안쓰러워 죽겠구나. 왜 이리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오히려 어미와 동생들을 걱정했다는 너는 역시 인정많고 착한 내 큰 아들이다. 어미 이름도 보배 라고 지어주는 신중함이 더 그렇게 보인단다.
너 또한 이 어미가 살아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지. 큰 아들 노릇을 못해 불효자다. 동생 수원이를 만나면 큰 절을 하려 했다 며 동생 사망소식에 통곡하던 네 모습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린다. 이 어미가 아들을 네 동생을 앞세웠으니 할 말이 없구나.
이 어미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당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아들인 너를 세례받게 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마음아팠는지 아니. 네 여동생 순자가 오빠도 성당에 다녀. 그러면 아버지도 작은 오빠도 하느님 나라에 가서 만날 수 있어 라는 말에 여기도 성당이 있고 천도교도 있는데 나는 그런 거 안믿는다 고 했을 때 좀 서운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한번 생각해보겠다 는 너의 대답이 왜 그리 고마운지. 이 어미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려는 우리 큰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거든. 그러나 네가 정말 성당에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구나. 북한에는 신부님이 안계신다고 들었는데.
강산이 다섯번 바뀌었어도 너는 어쩌면 그렇게 옛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니. 고향이 그리워 애태운 네 심정을 알겠구나. 네 말대로 너의 옛 친구들을 불러 네가 선물한 술을 한잔씩 따라주며 너의 소식을 전해주마.
너를 만났으니 이젠 한도 원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미의 노파심인지 네가 자꾸 걱정이구나. 이 어미 생각을 하다가 혹시 병이나 나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너도 죽은 줄 알았던 이 어미를 만나고 예뻐하던 여동생과 제수 조카들을 만났으니 원이 없겠지. 이곳 생각은 잊고 열심히 살아라. 이 나이에 다시 너를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네 동생 말대로 하느님 나라에서 꼭 만나자. 거기서는 가슴 찢어지는 생이별이라는 것이 없을거야.
네 체온이 아직도 어미의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그 온기를 간직하며 너와 며느리 손주들을 위해 기도하마.【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