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이산가족 상봉은 반세기 동안의 단절의 벽을 잠시나마 허물고 민족이 하나임을 보여줌으로써 분단의 아픔을 딛고 화해의 길로 함께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 주었다.
정부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이산가족 문제가 남북의 최대 현안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2 3차 상봉을 비롯한 상설 면회소 설치를 후속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 등에 대해서도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 또한 이같은 맥락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앞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남북 교류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시하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이번 상봉은 15년 전의 이산가족 상봉에 비해 여러 가지로 진일보하기는 했지만 남북한간에 엄존하는 벽을 아울러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컴퓨터 추첨을 통해 선발된 남측 방문단과 월북자들로 엄선된 것으로 보이는 북측 방문단의 차이는 상봉 당사자들이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지켜본 일반 국민들에 의해서 대부분 감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됐던 것은 50년 만의 상봉이라는 감격이 이같은 차이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되풀이될 경우 이같은 감격이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혈육을 만났다는 감정 보다는 현실적인 이성 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고 그에 따른 부작용들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우선 예상할 수 있는 것이 가족 당사자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의 경제적 문제다. 정부는 3박4일간의 상봉에 모두 30억원의 경비를 지출했다. 상봉을 신청한 7만여명을 모두 포함한다면 그 액수는 천문학적 수치에 이른다.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에 따르는 경비 절감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 못지않게 체제와 이념의 차이 그리고 그 속에서 50년 이상 젖어 살아온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차이 등도 상봉이 계속될수록 상당 기간 서로에게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그 와중에서 북한이 체제 존립의 위협을 느낄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이같은 문제에 대한 대비책이 사전에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가지는 남과 북이 서로의 실체를 현실적으로 존중하는 가운데 다양한 인적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산족 상봉뿐 아니라 정치인들간의 만남 종교인들의 만남을 비롯해서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50년간 고착돼온 단절의 벽을 하나하나 허물어가는 노력이 남과 북 양측에서 모두 요청되고 있다. 특히 종교와 문화는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이 두 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산 가족 문제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는 2 3차 후속 상봉 및 면회소 설치 등을 통한 제도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현실 여건상 수혜자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7만6000명의 상봉 신청자 중 이번에 겨우 100명만이 상봉의 감격을 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모두 한번씩 상봉한다 하더라도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이산 1세대 123만명 중 60세 이상이 69만명에 이르고 70세 이상의 고령자도 26만명임을 고려한다면 대다수가 숙원인 가족 상봉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생전에 상봉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한을 달래고 어루만져 줄 노력 또한 우리 사회는 안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많은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지만 상봉하지 못하는 이들과 아픔을 함께함으로써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치유자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이다.
원주교구 김영진 신부가 반성했듯이(본지 제591호 8월20일자 9면 참조) 우리 교회는 그동안 북한동포돕기나 통일과 민족화해를 위한 기도운동은 강조했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달래고 어루만지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비원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나 감격적인 상봉 후 오히려 허탈감에 빠질 수도 있는 이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이 전교회 차원에서뿐 아니라 일선 본당을 중심으로 신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일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더욱 근본적으로 남북의 화해 분위기를 지속 확산시켜 나가 통일에까지 이르도록 할 화해교육 통일교육도 교회의 사목적 역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또 북한동포돕기 운동과 함께 남한에 와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제3국에서 떠도는 북한 이탈 주민들에 대한 교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도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 새 천년기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총체적으로 제시할 주교단 사목교서의 필요성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 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