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바르나바) 신부
아! 이제야 만나는구나! 이제야 만나는구나! 그토록 그립던 혈육을 이제야 만나는구나! 조국이 나뉘어진 지 50년만에….
오늘 지구상 한쪽 모퉁이에 갈매기 콧등처럼 튕겨나온 작은 땅덩어리 조선반도가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구나! 남과 북에서 도시와 시골에서 노인도 젊은이도 남자도 여자도 오늘 한 움큼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 원통함의 눈물 사랑과 감동의 눈물 후회와 용서의 눈물을 말이다.
얼마나 모질었던 이 민족의 운명이냐. 얼마나 처참하고 가련했던 이 백성의 역사냐 이토록 전 민족이 울음바다를 이룬 적이 그 얼마나 많았더냐.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이 땅의 가련한 이 백성이 흘려가며 살아가야만 된단 말이냐. 생각하기도 기억하기도 싫은 이 민족의 역사였지만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민족이 해방된 날 성모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날 남과 북의 영혼들이 얼싸안고 만남과 그리움 용서와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내는 오늘은 그렇지도 않다. 꿈결에도 보고프던 고향 내음에 취하고 혈육의 숨결 보듬으며 깍지 낀 이 손들 포개고 포갠 이 손들을 풀지 않으며 부둥켜안은 우리의 몸뚱이를 떼어놓지 않으리.
수십년 숱한 날 눈알이 짓무르도록 그리움에 울어대던 사연을 지구상 그 어느 누가 헤아려 줄 수 있단 말이더냐! 가슴이 터지도록 보고싶고 그립고 불러보고 싶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들아! 딸아!
우린 서로를 위하여라면 사지를 도려내고 오장육부를 떼어주며 살아왔던 한핏줄 한가족 한겨레가 아니었더냐!
이제는 다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더 이상 우리를 갈라놓게 해서는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리라 몸부림치고 발버둥도 치리라.
“잘 있었니? 건강했니?”라는 한마디 말보다 눈물이 앞서는 가족들의 아픈 마음.
“오빠 왜 좀 일찍 오지 그랬어. 엄마는 돌아가셨단 말이야”하면서 몸부림치는 누이동생의 통곡소리.
“어머니 어디 갔다 이제야 왔어요.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팔십이 된 어머니 품속을 파고들며 흐느껴우는 환갑된 딸의 절규와 몸부림.
그 눈물 그 몸부림 그 흐느낌이 어찌 그들만의 눈물이요 몸부림이며 흐느낌일 수 있겠는가!
텔레비전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50년만의 상봉을 한 줄의 글로 엮으려 하는 나는 얼마나 경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고 긴 그들의 기다림 속에 감추어졌던 그들의 아픔을 사제인 나는 얼마나 헤아리려고 했었는지.
반 백년을 기다렸건만 아직도 기약없는 그날을 고대하며 이 밤도 밤새 뒤척이고 베갯잇을 적시고 있을 천만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사제인 나는 얼마나 닦아주려고 애써왔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경솔한 마음 죄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래도 한 줄의 글을 다듬고 있음은 지난날을 그들 앞에서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찬 민족의 역사 앞에서 용서받고 싶기 때문이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사제로서 그대의 아픔을 모른 척했나이다. 그립고 보고파서 우는 그대의 눈물을 닦아줄 줄 모르는 사제로서 살았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용서하여 주십시오.
교회의 사제로서 이 민족의 고통을 나누어지지 못했나이다. 강대국의 총칼에 동강난 허리가 아파 반 백년을 신음하며 살고 있는 이 민족의 상처를 치유할 줄 모르는 사제로서 살았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리스도는 우는 이의 눈물을 닦아주었을 것이지만 교회는 민중의 아픔을 치유하려고 고통과 고난의 용광로 속으로 뛰어들어갔을 터이지만 나는 아니었나이다. 그리스도의 사제 교회의 사제를 자처하는 나는 아니었나이다.
그러나 이제 믿어주십시오.
만남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을 그래서 만남을 위하여 땀 흘리겠다는 나의 결심을 믿어주십시오. 하느님이 인간을 만나러 오셨다는 것을 인간이 되신 예수께서 뭇 민중을 만나기 위하여 밤낮을 헤매고 다니셨다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교회는 지금도 우리 모두가 이 민족을 위하여 만남의 사도가 되도록 가르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 새겼음을 믿어주십시오. 천만 이산가족을 위하여 아니 7000만 내 겨레를 위하여 아니 그리스도의 사제로 살아야 하는 나의 삶을 속이지 않기 위하여서라도 만남의 사도가 되어야겠다는 나의 결심을 믿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