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솟아오른 첫 햇살이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비추는 장관 앞에서 우리 언론사 사장단 일행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감격에 휩싸여 한동안 말을 잃었다.
9일 새벽 3시30분 숙소 소백수초대소를 출발해 차로 1시간 20분 가량을 숨가쁘게 달려와 만난 백두산 천지. 검푸른 빛의 거울 같은 천지에 부서지는 햇살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쌓인 분단 반세기의 한을 씻어내고도 남을 만큼 찬란하고 눈부셨다.
백두산을 기점으로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뻗어나가 삼천리 금수강산을 이루니 민족의 시원(始原)이라는 말이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리라.
이번 백두산 등반의 감흥은 2년 전 중국 연변을 거쳐 올랐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때는 비경에 감탄하기보다는 내 나라 내 땅을 놔두고 어찌 이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가 한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도 비가 많이 내려 “한달에 40일은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백두산을 청명한 날을 골라 고스란히 내 민족의 땅을 밟고 올랐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총 담수량이 19억5500만㎥에 이르는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 둘레의 벽은 신비 그 자체다. 세상에 어느 거대한 힘이 이처럼 엄청난 양의 물을 온전히 지탱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한민족의 저력은 바로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비탈 둔덕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5∼12일 7박8일간 북한을 방문한 남한의 언론사 사장단 46명은 북측으로부터 과분할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숙소가 일반 호텔인 고려호텔에서 외국 귀빈 접대용의 봉화초대소로 바뀐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북한 체류기간중 북한 언론사 관계자들과 안내원들이 보여준 친절한 태도에서 손님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우리 민족의 미덕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 주민들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평양 시내에서 숙소인 봉화초대소까지 차로 30여분을 오가는 동안 거리 풍경과 주민들의 표정을 눈에 익을 정도로 접할 수 있었다. 평양은 녹지공간과 대형 건축물 우뚝 솟은 조형기념물 등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룬 도시였다. 한 도시의 조형물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도시의 역사와 예술을 평가할 수 없기에 방문자의 눈으로 만수대 기념비 등과 같은 조형기념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현재의 모습에 시간과 정성을 더하면 유럽의 고도(古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곳이 평양임을 새삼 느꼈다.
평양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민들의 부지런한 모습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다들 부지런히 길을 걷거나 이런저런 일에 땀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주 검소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눈에 역력했다. 그것을 가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눈에는 검소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와닿았다. 앉아있는 신사보다 땀흘리는 일꾼이 더 거룩하다 는 말이 있듯이 어떠한 처지에서건 자신의 생활에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나눔과 협력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남북관계에서의 나눔은 과거처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에 한정돼서는 안된다. 서로 조금씩 더 양보하고 이해해서 그들의 부족한 점을 우리 남한에서 채워주고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을 그들이 채워주는 나눔과 협력을 이뤄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몇년 전 연변의 교포시인 김철씨가 “남녘은 풍요와 포만의 비극이 북녘은 빈곤의 비극이 휩쓸고 있다”고 한 말을 곱씹게 된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상생(相生)의 나눔과 협력은 정말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민족통일의 밑거름이 될 게 틀림없다.
이번 방북기간중 6일 주일미사를 대구 매일신문의 김부기 사장 신부와 봉화초대소 휴게실에서 봉헌했다. 출국 전에는 평양의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할 생각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숙소에서 장명수(펠릭시아) 한국일보 사장 김영용(토마스) 한국경제신문 사장 안형순(이냐시오) 강원도민일보 사장 김경숙(로렌조) 영남일보 사장 등 13명과 함께 봉헌했다.
미사 강론시간에 군종신부로 생활하는 동안 마음 속에서 떨쳐내지 못했던 해묵은 얘기를 꺼냈다. 군종신부 시절 중서부 전선 비무장지대(DMZ)에 놓인 철조망과 서로를 무섭게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볼 때마다 저것들은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에 있어야 할 것들인데… 라고 중얼거리며 민족 분단의 현실을 가슴이 쓰리도록 아파했다. 그 아픔은 철조망 너머에 있던 북녘 땅을 직접 밟고 있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리고 미사 참례자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열심히 화살기도를 바치자”고 호소했다. 북녘 땅 한가운데에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북녘 형제들을 위해 봉헌한 이날 새벽미사의 감회는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방북기간중 북한의 고위 관계자들과 안내원들이 로만 칼라를 한 필자의 복장을 보고 다들 “천주교 신부님 아니십니까?”하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아주 특이했다. 다들 천주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이 다가와서 말을 건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상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앞서 북한을 다녀간 많은 신부들이 좋은 이미지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방북 마지막 날 “신부님!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납시다”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안내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일수록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북녘 땅. 산과 강은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빛이다.
창 밖으로 아득히 멀어지는 북녘을 내려다보며 묵주를 손에 쥐고 성호를 그었다.
“55년 분단의 아픔과 갈등은 하느님 당신만이 온전히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서로가 더 이상 닫혀진 시간 속의 잊혀진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당신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민족을 어여삐 굽어살피소서….”
갈라진 형제들의 응어리진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구름들은 바람에 실려 남과 북을 한가로이 흘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