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광복절인 8월15일을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로 지낸다. 이날 모든 신자들은 주일과 마찬가지로 거룩하게 지내면서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 특히 올해는 성모 승천 교리가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로 선포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이 축일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본다. 편집자
성모 승천은 비록 성서에 기록된 사실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과 특히 구원의 역사인 구세사(救世史) 안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탁월한 역할을 바탕으로 교회가 선포한 믿을 교리다.
교회가 성모 승천 축일을 언제부터 기념하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 기원은 약 4세기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순교자나 성인들을 그들의 사망일에 기념하던 관습에 따라 4세기 중엽에 복되신 동정녀 기념일 을 성모의 죽음과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6세기쯤에는 축일의 이름이 도르미시오(dormitio) 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도르미시오란 일시적으로 잠에 떨어짐 이란 뜻으로 지상생활을 마친 후 성모 마리아의 상태를 표현했다. 그후 8세기에 들어와서 이 축일을 기념하는 날짜가 8월15일로 확정됐으며 이때 축일의 명칭도 도르미시오 에서 마리아의 승천 으로 바뀌었다.
이후 성모 승천 대축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1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8일) 등과 함께 교회 전례력에서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대축일 중 하나로 지켜져 내려왔다.
그러나 성모 승천이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로 공식 선포된 것은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1일 교황 비오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로 들어올림받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라고 선포함으로써였다.
이 선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자신의 힘으로 하늘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하늘로 들어올림받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구별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의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승천을 전에는 몽소승천(蒙召昇天) 또는 피승천(被昇天)이라고도 불렀다.
덧붙여서 생각할 것은 예수 승천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승천이 나타내는 하늘 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서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친 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충만한 영광에 들게 되었다 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마리아의 승천을 믿을 교리 로 선포하면서까지 마리아에게 각별한 영예와 공경을 바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마리아가 구세사에서 수행한 역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순명으로 예 하고 응답했을 뿐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데 일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사업의 뛰어난 협조자가 되었고 나아가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바로 이런 역할로 인해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상생활을 마친 후에도 그 육신이 부패되지 않고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느님의 영광 속에 들게 되었다고 교회는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승천은 또 우리에게는 희망의 표지가 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지난 1974년에 발표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 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인류에게 그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일”이라고 설명했다. 즉 마리아의 승천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앞서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인들에게는 일생을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한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일상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이것이 마리아 공경의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있다.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