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오유정(32·젬마·서울대교구 이태원본당)씨는 지난 16일 북측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명단이 발표됐을 때 TV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6·25 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했던 큰아버지가 혹시 명단에 실렸을까 해서였다. 물론 명단엔 오씨가 여럿 있었지만 큰 아버지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그녀의 머리 속에 아버지와 할머니의 50년 질곡의 삶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큰아버지의 의용군 입대는 가족들에게 커다란 아픔을 남겼죠. 지난 3월 돌아가신 아버지는 고2때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하시려다가 신원조회에서 걸린다는 걸 알게 돼 방황하시다가 포기하고 평생 흥사단과 대한적십자사에서 근무하셨지요. 더 큰 피해자는 87년 타계하신 할머니였어요. 장남을 기다리신다고 고향 팔당에서 평생 이사를 가지않고 증·개축도 안하시고 사셨어요. 말년에 건강이 좋지않아 서울에 오셨는데 큰아들이 돌아올지 모르니 팔당집에 데려다 달라고 어찌나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지 생각해보면 아픈 세월이었지요.”
1985년 50명씩으로 구성된 이산가족 방문단이 남쪽과 북쪽을 오간 이후 15년만에 남북을 오갈 남한과 북한의 이산가족 방문 신청자들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특히 월북자 이산가족들의 아픈 사연이 속출하고 있다. 월북자 가족 이라는 낙인과 함께 반세기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 물론 이들을 옥죄어온 연좌제 는 80년 개헌과 함께 실정법상 폐지됐지만 분단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살아온 이들의 삶은 알게 모르게 고통의 연속이었다.
지난 18일 대한적십자사를 찾아 월북한 외삼촌 이길영(71)씨의 이름과 사진을 확인한 실향민 2세 박찬운(39·변호사)씨는 “애초부터 공직에 나간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연좌제는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어머니나 일가 친척들은 50∼70년대를 살며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월북자 가족들이 그 동안 겪은 고통은 헤아릴 수 없다. 부모나 형제가 의용군에 끌려갔거나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직진출은 물론 군 생활에서조차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허다하며 70년대 중동 건설경기 붐이 일었을 때는 해외출국자체가 금지되는 바람에 일하러 나가지도 못했다. 부모 형제는 물론 8촌 이내의 친척에게까지 적용되던 연좌제 때문이었다.
월북자 가족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주위로부터의 달갑지 않은 시선도 견뎌야 했다. 연좌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지난 83년 첫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아픈 사연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왔다.
월북자 가족 뿐만이 아니다. 20∼30년 전 석방된 전향 장기수의 가족들도 주위의 시선에 심리적 연좌제 의 피해자가 돼왔다. 경북대 재학중 월북했다가 남파돼 61년 7월 체포된 비전향 장기수 김중종(74)씨는 석방 이후에도 제사 때를 제외하고는 고향 안동에 있는 형의 집에조차 잘 가지 못한다. 주변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자신으로 인해 수난을 당한 집안의 과거가 생각나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동안 가려지고 숨겨졌던 월북자 가족들의 아픔이 8·15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이 발표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측에서 통보한 200명 중 재일교포 출신의 1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자의든 타의든 월북자로 확인되면서 부터다. 월북자 가족들의 아픈 사연들이 공개되면서 그 동안 숨겨왔던 월북자 가족들이 용기를 내어 적십자사에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는 사례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20일 민주당 지도부의 당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과거에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가족들이 상봉했으나 이번에는 월북자 가족들이 상봉한다”면서 “이는 민족화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말처럼 월북자 가족들의 상봉은 또 다른 측면에서 민족화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산가족 모두가 민족 분단의 피해자들이지만 특히 월북자 가족들은 분단과 냉전체제를 고착화시켰던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이고 이번 만남은 분단 이후 50년 이상 지속돼 왔던 이데올로기 콤플렉스 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이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이 전시용의 형식적인 만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 와 교류협력 부속합의서를 통해 명시된 이산가족 상봉면회소 의 설치문제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개인의 생사와 소재확인 서신 등 통신교류 제3국이나 한반도에서의 가족상봉 주선 등은 더 이상 미룰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는 이산가족 교류 사업의 추진 여건을 개선해 이산가족 특히 월북자 이산가족들의 심적·물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역점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박찬운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반갑게 만날 사람들은 거의 다들 세상을 떠나고 있어요. 미워할 만큼 미워했고 아플 만큼 아픈 시대를 살아왔어요. 이제 희년 인데 앞으로 남북간에 새로운 화합과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민족의 또 다른 50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