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저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방송인 이지연(53·루크렌시아)씨는 17일 대한적십자사에서 북에 살고 있는 오빠 리래성(68)씨의 사진을 직접 확인했다. 3살 때 헤어진 후 사진으로만 봐왔던 오빠 리씨가 하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여동생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사진 속의 오빠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씨는 지난 1984년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진행할 당시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자 는 생각에 이산가족임을 밝히지 않았다. 138일간 방송 진행을 한 이씨는 마지막 날에서야 “저도 이산가족입니다”라고 한마디 했을 뿐.
더군다나 이씨 가족들은 50년간의 기다림에 지쳐 2개월 전에야 오빠 리씨의 실종신고를 낸 상태.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오빠의 생사를 확인한 이씨는 “그 소식을 듣고 난 후로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감격어린 심정을 토로했다.
1남5녀 집안의 외아들이었던 리래성씨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휴전 후 일본 우정국 소인이 찍힌 리씨의 편지 한 통이 날라왔다.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 와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 편지가 마지막이었다.
오빠의 생사를 몰라 애태운 50년 세월도 그렇지만 편지도착 이후 계속된 정부의 감시는 이씨 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편지가 온지 며칠되지 않아 정보기관인 특무대 요원들이 들이닥쳐 이씨 집에서 몇 달간 진을 쳤다. 이씨는 “어려서 그것도 모르고 특무대 아저씨와 함께 놀고 장난을 쳤다”며 “그 이후에도 가끔씩 아버지와 어머니는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다니셨다”고 말했다.
방송생활을 시작하자 감시의 눈길이 이씨에게도 다가왔다. 연좌제가 폐지될 때까지 매달 한번씩 형사가 그녀를 찾아왔다.
방송생활 덕분에 발이 넓은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오빠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북에 있는 오빠에게 해가 될 것 같아 시도하지 않았다”며 가슴 깊이 묻어둔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이렇게 살아계셨는데… 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는 눈을 감는 날까지 아들을 애타게 기다린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올라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처음에는 생사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KBS 라디오 물어보세요 와 TV의 언제나 청춘 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평화방송 TV에서 사랑가 행복가 를 진행했다.【조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