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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시노드 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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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시노드는 1831년 조선대목구(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기 이전의 교구)가 출범한 후 16년이 지난 1847년 3월에 서울에서 소집된 조선교구 성직자 회의라고 할 수 있다.(당시의 시노드는 오늘과 달리 평신도들은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 성직자 회의의 결과를 바탕으로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장 주교는 장주교윤시제우서(장주교윤시제우서) 라는 교서를 발표했다. 한국교회 최초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이 교서는 전반적으로 엄격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혼인에 있어서 자녀의 의사를 존중할 것 과부의 재혼을 권고할 것 등 당시의 사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혁신적인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한국교회 두번째 시노드는 1884년 9월 제7대 조선교구장인 불랑 주교가 서울에서 소집한 성직자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는 주로 성사집전과 성무집행 등 성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었다.

1911년 조선대목구가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리된 후 초대 대구교구장인 드망즈 주교는 교구 성직자 피정을 계기로 교구 성직자 회의를 개최 교구의 기본지침을 담은 대구교구 지도서 초안을 마련한 후 아홉 차례의 회의를 거쳐 수정하고 1912년 6월1일 교구장 명의로 반포했다. 이 회의는 대구교구의 첫 시노드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목구에서도 1922년 교구장 뮈텔 주교가 교구 성직자 회의를 거쳐 서울교구 지도서를 반포했는데 이 회의 또한 교구 시노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교회법의 정신에 따라 성직자 뿐만 아니라 수도자와 평신도 대표들도 함께 한 국내 최초의 교구 시노드는 1982년 4월5일부터 1984년 10월3일까지 개최된 부산교구 시노드다. 부산교구 시노드는 이 기간에 네 차례의 총회와 65차례의 분과회의 등을 거쳐 10개의 의안을 작성해 통과시켰고 당시 교구장 이갑수 주교에 의해 교구 공의회 문서 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회의는 성격상 공의회가 아니라 시노드 임이 분명하다.
그 후 대구대교구는 1997년 11월30일부터 1999년 10월10일까지 교구 시노드를 개최 성직자·수도자·가정 등 7개 의안 65개항의 시노드 교서를 발표했다. 인천교구는 약 4년 가까운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6월6일 교구 시노드 개막총회를 열었으며 오는 11월19일 폐막총회를 앞두고 있다. 수원교구 역시 지난해 7월17일 시노드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시노드 체제에 들어갔으며 현재 시노드 대의원 선정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올해 교구장 사목교서에서 교구 시노드 개최를 발표한 이후 지난 5월3일 교구 시노드 사무국이 출범했으며 6월14일 시노드 주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현재 예비 준비단계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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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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