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염원하는 금강산 통일기행이 분단 55년만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주최로 11∼14일 3박4일 일정으로 펼쳐졌다.
전국에서 모인 379명의 참가자들은 분단의 세월동안 하나되게 하소서(요한17 11) 를 기도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성취되길 간절히 희망하며 가슴벅찬 순례 길에 올랐다. 이번 통일기행에는 1989년 평양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수산나)양을 데리고 휴전선을 넘은 문규현 신부와 임양의 부모 임판호(베드로) 김정은(엘리사벳)씨 부부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순례단을 태운 금강호는 하나의 교회공동체였다. 통일의 방주 금강호가 북녘 바다로 서서히 항진하자 순례단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북녘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날이 밝자 금강호는 북한 장진항 부두에 도착했다. 눈 앞에 펼쳐진 전경은 같은 하늘 낯설지 않는 땅이었다. 북녘의 아침은 하나의 민족임을 실감케 하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29명의 수녀들은 성서와 묵주 종교서적 등을 휴대하고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할 수 없는 규정상 십자가 목걸이를 마음에 품고 북녘 땅을 밟아야 했다.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 봉래산 이라 불리는 금강산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욕될 정도로 비경 을 뽐냈다.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만물상은 춘원 이광수의 표현처럼 천지창조의 현장 을 보는 듯했다.
문규현 신부와 임수경씨의 부모 덕분(?)인지 순례단은 이틀동안 아무 불편없이 외금강을 기행했다. 북측 관리원들은 “꽃가마에라도 태워 금강산을 구경시켜 주고 싶다”며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다.
금강산의 기이한 바위 숫자 만큼이나 참가자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정전화(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수녀는 6·25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가 생사조차 모르는 부친 전기옥씨와 금강산을 함께 오르는 심정으로 부친의 빛바랜 사진과 호적등본을 챙겨왔다. 이돈명 유현석 변호사는 학창시절 소풍왔던 금강산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삼선암을 배경으로 찍은 부친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한 할아버지는 똑같은 장소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찍었다.
순례단은 금강산에서 십자성호 조차 내놓고 긋지못한 설움(?)을 금강호 선상에서 봉헌된 미사를 통해 마음껏 토해냈다. 이들은 한결같이 “5000년을 살아온 한민족이 50년간 헤어졌다해서 원수가 될 수 없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함께 어울려 살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번 통일기행을 총괄한 박창일 신부는 “금강산 통일기행은 우리 민족이 왜 일치하고 통일을 이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현장학습”이라고 강조하고 “앞으로 북한 땅을 밟고 백두산에 오르는 통일기행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금강산=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