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명동 이라는 말을 들으면 단번에 명동성당을 떠올린다. 102년의 역사를 지닌 명동성당은 한국교회가 탄생한 요람인 동시에 한국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도 그럴까.
“명동성당은 물론 교회 건물이지만 종교인이 아닌 우리들에게는 시위와 집회의 장소로 여겨집니다.”
지난 3일 명동거리에서 만난 김동석(50·경기도 일산시)씨의 말은 1970∼90년대 억눌린 이들이 피맺힌 한을 풀어놓던 시위와 집회의 현장 명동성당 을 연상케 한다. 지금도 명동성당에는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이들이 연일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고 또 서울 시내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으레 시위를 마무리하는 집회장으로 명동성당을 선택한다. 그래서 명동성당은 아직도 민주화의 성지 요 힘없고 억눌린 이들의 하소연의 장이자 피난처로 불린다.
그러나 이제는 명동성당이 성당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보다 많이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민주 언덕 이라 불리던 명동성당의 오르막길을 포함해 명동성당 나아가 명동거리 전체를 일종의 문화광장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누구든지 와서 쉬고 삶의 양식을 얻어갈 수 있는 문화의 광장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명동성당부터 문화광장으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명동 전체를 먹고 마시는 유흥의 거리에서 문화의 거리로 바꾸자는 이야기다.” 명동본당 주임 백남용 신부는 문화 명동으로의 변모 를 염원한다.
사실 지난 1950∼1960년대 명동은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벌이던 문화의 산실 이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과 미술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 명동이었고 국내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명동 한빛은행 맞은편 대한투자금융 사옥 자리는 예전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공연이 줄을 이었던 시공관이 있던 곳이다. 한국교회 음악의 초석을 놓았던 고 이문근 신부도 1955년 귀국 첫 연주회를 시공관에서 가졌다.
서울대교구는 이런 문화 전통을 되살리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동안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명동성당 입구에 있는 가톨릭회관내에 평화화랑을 마련 명동을 찾는 이들에게 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또 지난 5월에는 교구 산하 재단법인 서울 가톨릭 청소년회가 명동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자는 취지로 1300여명의 청소년이 참가한 가운데 성당 오르막길에서 청소년 명동거리 문화 축제’를 개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공연을 통해 청소년들의 문화 욕구를 절감한 가톨릭 청소년회는 오는 9월부터 2개월간 민주 언덕에서 청소년 축제를 마련하는 동시에 내년 3월부터는 이를 상설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또 명동성당측도 지난해부터 월요일마다 인근 직장인들과 명동을 찾는 이들을 위한 한낮 음악회를 마련 문화공간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듯 문화관광부가 지난 3월 명동을 관광특구로 지정한 데 이어 서울시도 명동을 국제 청소년의 거리 로 선포하는 동시에 명동 입구부터 명동성당까지 480여m의 도로를 명동 역사 문화 탐방로 로 꾸미는 공사를 진행중이다. 서울시는 이 도로에 점토 벽돌을 깔고 대한종합금융 앞쪽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언제든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젊음의 광장 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명동 지역 상인들은 1973년까지 국립극장으로 사용된 시공관을 되찾자는 취지에서 지난 1일과 2일 명동거리에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문화의 공간 명동 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교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나아가 문화를 복음화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명동이 문화의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앞장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명동성당 안에 평화화랑뿐 아니라 축제·연극·세미나·전시회·공연 등을 상시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찬란한 문화를 선도했던 유럽교회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장 조광호(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신부는 이같이 역설하면서 “현대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매체는 문화이기에 복음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교회는 이제 더 이상 문화를 외면하면 안된다”고 덧붙였다.
서강대 김산춘(예수회)신부는 “이제 성당에 와서 성사적 혜택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교회가 문화를 끌어안고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데 진력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강조한다. 유럽의 경우 주교좌 성당에는 으레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어 사람들이 미사 후 관람도 하고 문화공연도 즐기며 신앙의 성숙을 꾀한다고 전한 김 신부는 “한국교회도 성사뿐 아니라 문화적 양식을 동시에 전해줄 때 진정한 복음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문화는 더 이상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잼 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빵 이기에 교회는 이 양식을 채워주기 위해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는 현대인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고 이를 통한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대교구 홍보실 정웅모 신부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는 문화의 시대다. 그러나 아직 한국교회에는 소위 문화 예산 이라는 항목조차 없다. 문화에 대한 교회의 관심도를 드러내는 자리다. 이제는 교구 예산의 1라도 문화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미술관과 박물관 등 교회내에 상설 문화전시관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간 부족이 아니다. 인식의 문제다.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부터 찾아보고 시대적 요청으로 다가오는 문화선교에 대비하는 자세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 ”【박주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