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는 노인들이 많은데 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서 곧잘 모임을 갖는다. 그러면 그 자리에 나도 끼어든다. 시골 노인들은 나 같은 젊은 신부가 놀이자리에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젊은 신부가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거꾸로 나는 노인들의 구수한 인생철학 같은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
이제는 농촌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품앗이를 찾아 볼 길이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마을 사람들끼리 이웃 농가와 만나는 횟수가 적다. 최근엔 무안 함평 해남쪽 회원들이 일꾼들의 약삭빠름에 질려버렸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일당 4만원에 일해주기로 했는데 다른 곳에서 몇 천원 더 준다면 그 쪽으로 가버린다는 속상한 이야기다. 사람의 정이 아니라 돈이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어버린 거다.
이제 그들 역시 농민 농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나 보다. 이미 농업노동자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도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도시적 산업적 사고의 나래를 펼칠 수밖에 없는 나름의 고통이 있으리라.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 농촌은 일종의 도시로부터 소외돼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체감을 갖게 한다.
간혹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에서 살겠다고 내려온 사람이 피곤하게 느껴지곤 한다. 자기 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려는 사람들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남을 가르치기만 하려는 사람들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 이들을 대하기가 피곤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 또한 즐거움이 있는 노동이다. 생명을 키우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농업노동자라 하더라도 이런 농민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21세기에 대한 희망을 이들에게서 본다.
나는 농민들을 경계하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다. 농민들의 말과 행동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나는 농민사목을 하면서 인간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인간에 대한 희망을 무조건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나의 농민사목에 대한 관심은 처음의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믿고 자연에 대해 희망을 갖자는 것이다.
오늘도 기쁨의 마음으로 농촌에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