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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는 거룩한 새 생명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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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8일부터 8일간 열린 제47차 세계성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로마를 찾은 순례객들을 맨 먼저 맞이한 것은 따가운 햇살과 푸르디푸른 하늘이었다.

지중해성 기후로 대회기간내내 섭씨 4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우리나라처럼 습하지는 않아 불쾌감은 없었다. 로마라는 세계적인 도시가 공해에 찌들지 않고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울에서만 살아온 기자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폐막미사가 거행되던 25일 낮에 빗방울이 한 두방울 떨어져 ‘미사때 비가 오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비는 안 오고 대신 먹구름이 시원한 양산 역할을 해줬다. 은총의 2000년 대희년 세계성체대회는 이렇듯 맑은 날씨 속에 순조롭게 진행됐다.
성체대회의 주요 행사가 로마의 4대 성당(성 베드로·요한 라테라노·성 바오로·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로마 시내는 특별한 대회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했다. 세계 각국의 순례객들이 평소보다 좀더 늘어난 정도랄까 하지만 이번 대회는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해 가톨릭의 심장인 로마와 바티칸에서 열리는 대회답게 알차고 조직적으로 운영됐다.
이번 성체대회의 프로그램은 크게 미사와 교리강좌 그리고 특별행사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가운데에서 의미가 깊었던 것은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교리강좌였다.

모두 4차례에 걸쳐 열린 교리강좌는 프란치스 유진 조지 추기경과 잔 마리 루스티거 추기경 등 세계 각국의 저명한 성직자들이 주관했다. 매회마다 신앙 증언이 잇따라 성체신심의 실천적 측면에 신경을 쓴 주최측의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교리강좌와 신앙증언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것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삶 속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성체성사에 나타난 구원의 신비가 개인적인 신심 차원에 머무는 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지적은 특히 한국 신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1일 성베드로 광장에서 ‘교회의 삶과 선교사명을 위해 바쳐진 성체’를 주제로 직접 교리강좌를 진행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이를 기념하는 로마 세계성체대회야말로 모든 대희년 행사 가운데 절정”이라며 이번 대회가 갖는 중요성을 역설했다.
교황은 80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회 기간 중 모두 4번의 행사를 주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개막식과 교리강좌 성체행렬과 폐막미사에 참석한 교황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참석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미소로 답하는 교황의 얼굴에는 시골 할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온화함이 배어있었다. 거동은 불편했지만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몇년 전부터 대희년 손님 맞이를 준비해 온 로마는 매우 산뜻한 인상을 주었다. 시내 곳곳에 안내소와 화장실 등을 설치 순례객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려는 시 당국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서울에 4대문이 있는 것처럼 로마도 성안과 성밖이 구분되는 도시다. 성안으로는 일반버스의 출입이 통제되는 관계로 단체 참가자들은 대회장 이동에 큰 불편을 겪었다. 성밖 가까운 곳에 버스를 주차하고 대회장까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더운 날씨와 함께 순례객들을 지치게 만드는 복병 이었다. 하루종일 갈증에 시달여야 했지만 물값이 만만찮아 이래저래 고생이 컸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덕분에 반경 5㎞ 정도에 불과한 로마시내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순례객들은 행사 몇 시간 전부터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서 기다리다가 행사장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같이 달려가 자리다툼을 벌이곤 했다. 그래도 단상 앞 자리는 항상 특유의 돌파력(?)을 자랑하는 한국 신자들 차지였다.

세계 각국의 순례객 가운데 가장 돋보인 이들은 단연 한국 신자들이었다. 행사 때마다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태극무늬 부채를 들고 나타난 한국 대표들은 길을 지날 때면 큰 박수와 함께 연신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전통 의상을 입고 참가한 이들로는 한국 대표단이 유일했다. 폐막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한국 참가자들로부터 부채와 태극기를 얻어가려는 사람들로 인해 부채와 태극기가 금방 동이 나기도 했다. 특히 주님성탄성당에서 펼쳐진 우리소리관현악단과 부산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회의 공연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전통미를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대회기간 중 한국을 전세계에 알린 또 다른 기회는 폐막미사 중 울려 퍼진 한국어 기도였다.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등 모두 7개 언어로 준비된 신자들의 기도순서에서 한국어 기도가 제일 먼저 낭독되자 한국 신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활하신 주님의 신비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라는 한국 수녀의 기도가 성 베드로 광장에 울려 퍼지자 한국 신자들은 숙연함에 잠시 목이 메이기도 했다.
제47차 세계성체대회는 2004년 멕시코 과달라하 대회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이번 성체대회를 통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일상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일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순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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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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