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앞바다와 거제도 사이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어촌생활은 무척 힘들었고 어촌의 특성상 아버지 어머니는 한해에도 몇번씩 무당을 불러 굿을 할 정도로 미신이 강했다.
그런 우리 가정에 복음의 씨를 뿌린 사람은 아내다. 결혼할 당시 아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결혼 후 피조개 사업의 투자 실패와 세살도 되지 않은 딸을 사고로 잃는 불행이 겹치면서 냉담했던 아내는 다시 하느님을 찾았다. 평소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당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지만 실의에 빠져있는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성당에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세월이 흘러 생활의 안정을 찾기 시작하던 어느날 아내가 “성당에서 나와 다시 한번 결혼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결혼을 하다니? 사연인즉 조당에 걸려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신자인 아내가 주임신부와의 면담시간에 남편과 자녀들을 성당에 데리고 나오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약속을 했다. 그리고 86년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우리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생활했다. 하지만 고집 세고 완고한 시아버지로 인해 아내는 많은 고통을 겪었다. 예로부터 토정비결과 미신을 맹신하는 가풍 때문에 우리 부부는 성당에 다닌다는 말조차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이 주님을 알도록 해달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기도했다. 무엇보다 아내의 노력이 컸다.
그런 어려움 중에서도 동생들을 결혼시키고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면서 우리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가족들에게 가랑비에 옷을 적시듯 은근히 인식시켰다. 기도 덕분인지 아버지의 허락 아래 어머니가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아버지를 당신의 품으로 인도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두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성당에 나갈 것을 권유 세례를 받도록 했다. 1년에 몇 차례씩 굿판을 벌이고 때가 되면 거르지 않고 토정비결을 보던 우리 집안에 뿌려놓은 복음의 씨앗이 조금씩 조금씩 싹을 틔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너그들 전부 다 성당에 가는디 나도 갈란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나 세례식을 일주일 앞두고 아버지는 그 특유의 고집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틀렸구나 하고 낙담하면서도 하느님께 매달렸다. 우리 모두의 기도 덕분인지 결국 아버지는 세례를 받았고 그날 우리 가정에는 벅찬 기쁨 때문에 하루종일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집안의 모든 미신관련 책과 행위는 사라졌다.
이제 76세의 아버지는 매일 40단씩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세례를 받지 않은 둘째에게 성당에 다니라고 잔소리 를 하는 하느님의 자녀로 바뀌었다. 결국 둘째 동생 부부와 조카들도 아버지의 잔소리에 두손을 들고 교리를 받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아내가 품고 있던 작은 신앙의 불씨가 훨훨 살아나 우리집안 가족 14명을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었다. 이는 무엇보다 아내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자 했던 데에서 거둔 결실이다.
우리 평신도들이 먼저 가정에서 신앙인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야 선교가 확대되고 더욱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