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자 그리스도를 대리해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는 교황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신자들의 일치를 다짐하는 교황주일 .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단의 으뜸이자 전체 교회를 돌볼 책임을 맡은 초대 교황 사도 베드로 이후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264명의 교황 중 새로운 세기를 연 교황은 모두 20명이다. 이들 중 대표적인 6명의 교황을 선정해 소개한다. 편집자
▲성 대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사목적 열성이 대단했던 교황. 교황좌에 오른 후 사목직에 대해 곧 작업을 시작 사목적 규범서를 편찬했다. 고대와 중세의 교차기에 재위한 교황은 유럽인들의 윤리생활과 그리스도교의 바른 생활에 대해 지도했고 이를 통해 앵글로색슨과 카롤링거 문화를 일으켰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에서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의 글을 374번이나 인용하고 있으며 그라시아노의 교회법 연구와 독일·스페인의 신비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1298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를 교회의 위대한 박사들 목록에 삽입할 정도였다. 특히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정리한 그레고리오 성가는 종래의 모든 성가를 수정해 보급한 것으로 자연스럽고 단순하며 평음이면서도 장엄한 종교적 정서를 잘 드러내는 음악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실베스테르 2세(999∼1003)=945년께 프랑스에서 출생한 교황은 수도자 출신으로 수학과 문법 변증법 음악 천문학 등 학문을 장려한 인물로 꼽힌다. 이론과 실제적인 면을 강조해 천문 지도 오르간 수사학 궤도 등을 만들게 하고 힌두-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했다. 교황의 정치학 주교의 행정 수학 과학 등에 관한 서신과 기록은 그 시대의 특징과 교황 개인의 활동을 잘 보여준다. 교황의 학문적 업적은 원반 이론과 기하학에 대하여(미완성) 이성적인 것과 이성의 사용에 대하여 등이 있다.
▲인노첸시오 3세(1198∼1216)=교황 클레멘스 3세의 조카로 특히 많은 법령들을 반포했으며 6000통의 서한을 보냈고 교회법 연구를 장려했다. 또 성 도미니코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순회설교가로 일하도록 허락했다. 이들은 최초로 공인된 탁발수도회의 창시자가 됐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재위 중 알비파 등 많은 이단과 싸우는데 보냈으며 황제 선출이나 외교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황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제4차 라테라노공의회로 이를 통해 교회의 광범위한 조직과 제도를 쇄신했다. 인노첸시오 3세는 교황직을 동서 유럽을 완전히 장악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만든 인물이다.
▲클레멘스 11세(1700∼1721)=유럽에서 교황의 특권이 무너지는 시기에 재위한 클레멘스 11세는 유럽 열강의 전쟁 와중에서도 천성적으로 평화를 사랑했으며 학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프랑스의 얀센파와 갈리아주의에 대해서는 인내를 다해 투쟁했고 예수회가 실시하던 중국식 의례를 금지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교황은 또 주교들에게 교구 정주를 강조했고 성직자들에게 연중 피정 특히 성 이냐시오의 영신 수련 피정 방법을 권장했다. 분주한 사목활동중에서도 교황은 바티칸도서관의 장서를 늘리고 로마 문화재 보존에 힘을 기울였으며 성 요셉 신심이 돈독했다.
▲비오 7세(1800∼1823)=교황 비오 7세는 고통 중에서도 교회의 사명과 임무를 분명히 실천했고 불굴의 정신으로 교회의 영적 유익을 위해 투쟁한 위대한 교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재위 초기부터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 제1집정관이 된 나폴레옹과 정교조약을 맺었다. 결국은 나폴레옹에게 납치돼 사보나의 퐁텐블로에 감금당했으나 로마에 재입성 예수회를 복구했고 꿋꿋이 교황권과 교회의 권리를 주장했다.
▲레오 13세(1878∼1903)=사회문제에 관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노동헌장) 로 유명한 교황 레오 13세는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운동에 가장 강력한 자극을 준 교황.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걸친 그의 재위 25년은 교황으로서 가장 의미있는 업적을 남긴 기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노예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2개의 칙서를 발표했고 동방과 슬라브 교회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1881년에는 바티칸문서고를 열어 사학자들이 학자다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고 1902년 교황청 성서위원회를 설립했다. 또 사회의 조직과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칙서들을 발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오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