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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한시도 고향 떠난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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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공항에서 두 손을 마주 잡았을 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북녘 땅에 두고 온 부모 형제와 우리 수녀회 11명의 수녀님들 살아 계시기나 한 건지….”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윤보순(81·골룸바)·김금자(81·리타)·강오숙(77·루갈다) 수녀. 고향을 떠나온 지 반세기가 흐른 후에야 이 땅과 고향 땅의 지도자가 정겹게 만나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새삼 그 순간의 감격에 목이 메었다.

고향이 모두 이북인 세 수녀는 1940년 평양 상수구리에 있던 수녀회 본원에 같이 입회한 동기. 6·25때 피란 내려와 지금까지 수도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향 생각을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남들은 드러내놓고 망향가 라도 부르며 그리움을 달래건만 이들은 수도자의 신분이라 혈육의 정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본 적이 없다.

이들의 기억 속에는 1950년 12월2일 평양을 탈출하던 그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길어야 한달 짧으면 1주일 안에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요. 잠시 피신한다는 생각에 짐도 꾸리지 않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 1주일이 50년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강 수녀는 해방 직후 3년간 몸담았던 평안북도 안주본당 시절이 눈에 어른거린다.
“안주본당 뒷동산에 있는 누각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청천강과 그 너머의 영변평야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었지요. 본당에는 각기 회장이라 불리는 사목위원들이 10명이나 있었고 신자들도 신앙생활에 더없이 열심이었죠. 신부와 수녀들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해 주었던 신자들이 지금은 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강 수녀와 함께 안주본당에서 일했던 윤 수녀는 본당 부임 당시의 환대를 잊지 못했다.

“수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신자들이 집에서 좋다는 것은 모두 수녀원에 갖다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태어나서 그런 환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어요. 신자들은 이렇게 착했고 신앙면에서도 정말 강철같았습니다. 공산정권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던 시기라 다들 목숨을 내놓고 성당에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이들이 수련기를 마치고 처음 본당으로 나갔던 시기는 해방 직후 공산당이 북녘지역에 세력을 확대해가며 가톨릭을 탄압하던 때와 맞물린다. 이들의 길지 않았던 북녘에서의 사목활동은 수녀회가 해산된 1950년 5월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결국 수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고향 집에 돌아가 있던 이들은 국군의 평양 입성 이후 한데 모여 있다가 17명이 함께 남으로 피란해 왔다. 금방 돌아올 것 같아 빈손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옷 한벌 사진 한장 챙겨오지 못했다. 부모 형제들에게 변변한 작별인사도 못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 수녀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쓸쓸함이 진하게 묻어있다.

이들의 소원은 물론 당장 남북통일이 되어 남북의 동포가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이산가족 왕래나 서신교환이라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다행히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이 이들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의 만남은 대희년을 맞아 하느님께서 특별히 우리 민족에게 내려 주신 은총임에 틀림없습니다. 앞으로도 정상들이 자주 만나 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강 수녀는 다음달로 예정된 금강산관광 계획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있다. 비록 고향 평양에는 직접 못 가보더라도 북녘 땅을 밟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 “금강산에 가면 혹시 안내원 중에 두고 온 조카라도 끼어있지 않을까?”하는 괜한 기대도 해본다. 헛된 꿈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반가운 누군가를 꼭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건강 때문에 같이 못 가서 섭섭해하는 김 수녀와 윤 수녀에게 눈으로 확인한 북녘 산천의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들려줄 작정이다.

“처음 피란 내려왔을 때에는 납치된 신부님들이 빨리 풀려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아마 다 돌아가셨겠죠. 같이 못 내려온 11명의 수녀 중엔 우리보다 나이 어린 수녀들도 있었는데 한두명이라도 살아있다면 가족보다도 그들을 먼저 만나보고 싶어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아요….”
이들의 얼굴에는 당장 내일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부푼 기대보다는 실향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려는 표정이 역력하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한번도 평양교구를 떠난 적이 없다는 세 수녀. 이들은 “통일만 되면 선발대로 나서서 북녘 땅을 일착으로 밟겠다”면서 죽기 전에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보리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정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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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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