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알게 된 지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돌이켜보면 신앙의 참된 의미도 모른 채 아무 생각 없이 보낸 세월이었다.
그러나 본당에서 본격적인 선교운동이 시작되면서 나의 의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13번이나 거듭된 재교육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기력한 신앙생활에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의 원인 모를 갈증이 참생명에 대한 목마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미사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느꼈을 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생활도 변했다. 전에는 길을 갈 때 주위 사람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바쁜 일이 있어요”라고 대답했지만 이제는 “노인들을 위해 무료급식 활동을 가요. 함께 가실래요” “성당에서 병원봉사 활동가요”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전교의 밀알이 됨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전교 무기(?)는 성당에서 발행하는 월보와 주보다. 쉬는 신자 전입자 가톨릭에 대해 심하게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오다가다 아파트 현관문 안으로 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월보와 주보를 넣어 준다.
직접 만나 선교할 때에는 개인적인 유대관계에 중점을 둔다. 특별한 음식을 만들었을 때에는 꼭 선교하고자 하는 그 집과 음식을 나눈다. 물론 이 단계에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날 한 사람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성당에 나가고 싶은데 부담스럽고 얽매이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있제 우리가 맛있는 것 먹거나 좋은걸 보면 친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맘 들지않나.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아이가. 내가 니를 성당에 데리고 간다고 밥이 생기나 떡이 생기나. 니도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에 가슴이 뜨거울 날이 있을 기다. 지나놓고 후회하지 말고 나랑 한번 가보자.”
결국 그 사람은 나에게 이끌려 억지로 교리반에 나갔다. 이런 방법으로 다른 많은 이들도 교리반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교리교육 시작과 동시에 나의 고통이 시작됐다. 함께 교리반에 나가기 위해 전화를 걸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지려고 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안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하느님께 매달렸다. 길을 가다가도 화살기도를 했다. 나의 머릿속은 온통 예비신자 생각뿐이었다. 예비신자를 성당에 붙잡아 놓기 위해 예비신자의 아이들을 직접 주일학교에 데리고 다니기까지 했다.
어떤 때에는 극성스러운 나 자신을 보며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하며 한심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다시는 전교 같은 것 안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나와 레지오 단원들의 기도와 관심으로 예비신자들은 대부분 무사히 세례를 받았다.그때 그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세례를 받은 한 자매가 미사중에 훌쩍거리며 “나를 어느 누가 이처럼 한결같이 묵묵히 이끌어 주겠습니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줘서 고맙습니다”라며 두손을 꼭 잡을 때 진정한 보람과 어떤 신비를 느꼈다. 잠시나마 선교사명을 부담스러운 짐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묵상한다.“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Ⅰ고린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