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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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문헌 기억과 화해:교회와 과거의 잘못들 주요내요] 7·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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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사목적 선교적 전망들
1.교회가 과거의 잘못들을 인정하는 것이 사목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첫째 기억을 정화하기 위해서다. 과거의 말과 행위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고 느끼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또 서로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여 악행에 대한 적개심이나 그 부정적인 영향들을 없앨 수 있다면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진리에 순종하는 가운데 화해와 평화를 통하여 성덕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하느님 백성의 계속적인 개혁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개혁과 참다운 쇄신의 기준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실함이다.

셋째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그리고 그분의 해방·구원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삼천년기 에서 “많은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교회 입장에서 진지한 양심성찰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면서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우리 시대의 죄악들에 대해서 그들 역시 지니고 있는 책임에 관하여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제36항)
2. 교회의 용서 청원이 교회의 삶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먼저 교회의 회개 행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종교적·문화적·정치적·사회적·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 언론이 교회가 발표하는 특정 측면을 부당하게 강조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용서를 청하는 행위로 인해 얻는 영적인 선익과 그로 인해 치러야 할지 모르는 대가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잘못을 용서 청할 때에는 누가 청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지역교회의 주교든 아니면 보편교회의 목자(교황)든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교도권과 교회의 권위를 구별하는 것이 좋다. 교회의 권위에서 나오는 행위라고 해서 다 교도권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도권을 지닌 사람이 행한 복음에 위배되는 행위는 그 자체가 교도권적 카리스마(특은)와는 무관하다.

용서 청원을 받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 용서 청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역사적 신학적으로 합당한 식별을 거쳐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참으로 적합한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또 교회의 자녀들의 선의와 진리에 대한 사랑을 그들에게 증거하기 위해서다.


3. 대화와 선교 차원에서의 의미
교회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선교 노력의 차원에서 이런 행위들은 부정적인 측면들을 더 악화시킴으로써 복음화의 열정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대한 신뢰성을 더 높여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행위는 진리에 대한 순종에서 나오며 화해의 결실을 낳곤 하기 때문이다.

교회 일치의 차원에서 교회의 회개 행위의 목적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회개의 행위들이 상호간에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물론 때로는 예언자적인 자세가 필요할 경우 일방적이고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인 용서 청원을 먼저 할 수도 있다.

종교간 대화의 차원에서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수에 의해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와 자비에 대한 빛나는 신앙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있을 수 있는 편견을 확인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이런 회개 행위들이 다른 종교의 신도들에게 그들 자신의 과거 잘못들을 인정하도록 하는 자극이 되면 좋겠다.


문화와의 대화에 있어서 우리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회개와 용서의 개념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끝으로 시민사회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것은 은총의 신비인 교회와 시간 안에 있는 인간 사회는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교회가 과거의 잘못을 용서 청하는 것은 모범이 될 수 있으며 시민사회들이 기억을 정화하고 화해를 하기 위해 유사한 조치를 취하는 데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결론

진리를 인정하는 것은 화해와 평화의 원천이다. 교황이 말했듯이 겸손하게 추구하는 진리에 대한 사랑은 다양한 문화를 통하여 오늘의 사람들을 재일치시킬 수 있는 위대한 가치들 가운데 하나다. 진리에 대한 책임 때문에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제삼천년기 제33항). 그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 새로운 내일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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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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