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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날에 만난 낙태 시술 거부 산부인과 원장 강병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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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의사치고 낙태시술을 하지않는 의사는 드물다. 낙태시술이 병원운영의 주요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돈을 잘 버는 잘 나가는 산부인과 의사일수록 낙태시술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인천 부평에 있는 강병철산부인과 강병철(54 베드로) 원장은 돈보다 생명을 택했다. 병원 현관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상이 어쩌면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도록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가 소파수술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윤리적으로 아주 투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가족들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때문이기도 하고요.”
강 원장은 성모자애병원에 근무하다 1989년 개업하면서 아내 백정혜(46 글라라)씨와 약속했다. 돈보다 신앙이 우선이니 살인 하면서 돈은 벌지 않겠다고. 하지만 찾아오는 임신부들 가운데 딱한 처지의 사연을 듣다보면 마음이 흔들려 몇차례 유혹에 넘어갔다. 낙태시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가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다.
간호사들을 통해 남편이 낙태시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내 백씨의 태도는 완강했다. 백씨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 돈은 못벌어도 좋으니 낙태시술을 당장 그만두라. 계속 하면 헤어질 각오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 아빠가 낙태시술 문제로 싸우는 소리를 들은 딸들도 엄마편을 들었다. 구교우 집안인 양가 어른들도 낙태시술은 생명을 죽이는 죄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강씨 자신도 임신부의 딱한 사정을 봐주다보면 끝이 없다고 생각하던 터라 개업한 지 2년만에 확실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낙태시술을 하지않는 병원과 의사는 이 사회의 왜곡된 모습 탓인지 환영받기보다는 오히려 냉대받는 처지라는 것을 그는 실감해야만 했다. 우선 환자들의 태도가 냉랭하다.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 병원이라고 설명하면 그 뜻을 이해하려는 생각보다는 기분나쁘다는 듯이 돌아간다. 때로는 “왜 낙태수술을 안해주려고 하느냐. 뭐 그렇게 잘났느냐”며 따지기도 한다. “여기 아니면 병원이 없느냐 왜 이렇게 불친절 하느냐”는 소리도 듣는다. 자연히 환자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의 병원에서 낙태수술을 거부당한 환자는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가서 수술받는다. 강 원장은 자신만 안하면 된다는 행동에 한계를 부딪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신만이라도 끝까지 신념을 지켜야한다고 다짐한다.
“귀한 생명을 어떻게 없애려고 하느냐. 아이를 정말 키울 수 없다면 내가 책임지고 입양시키겠다”는 그의 설득에 망설이다 아기를 낳은 미혼모들도 있다. 그 동안 그가 비용까지 다 대주고 입양시킨 아기는 10명이 넘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고 있는 사람 중에도 고등학생 딸이 임신하자 낙태하러 딸을 데려온 경우도 있고 아이를 넷씩이나 두었는데 피임에 실패해 임신했다며 낙태수술을 해달라는 중년 신자들도 있었다.

아무리 신앙을 내세워도 신자들이 자신의 문제와 연관될 때는 이렇게 상황이 달라졌다. 낙태 후 고해성사를 보면 그만이라는 의식도 작용한 듯했다.

병원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낙태시술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경제적인 손실도 감수해야 했다. 불과 5 6년전 까지만 해도 잘 나가는 산부인과 병원은 낙태시술로 한 달에 수천만원씩 벌어들였다. 요즘에는 의사수가 많아지다 보니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달 낙태시술로만 벌어들인 돈이 1000만원 가량은 족히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처음에 낙태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출발했던 산부인과병원 중에도 버티지를 못해 슬그머니 낙태시술로 돌아선 사례들이 있다. 결국 산부인과병원과 낙태시술은 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강 원장은 부인암 전공으로 이 분야에는 꽤 알려져 있다. 그의 전공분야 덕분에 그나마 환자들이 많다 보니 낙태시술을 하지 않아도 병원 운영에 조금이나마 만회가 가능했다. 돈에 욕심을 냈다면 손해를 감수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세금을 내는데도 손해를 본다. 세무서에서 산부인과 병원에 세금을 적용할 때는 다른 과보다 보험청구액만큼을 세금으로 더 청구한다. 보험적용이 되지않는 낙태시술로 돈을 벌고 있지 않느냐는 의미다. 불법인 낙태시술이 묵인되고 있는 또다른 한면이다.
세무서에 가서 “낙태시술을 하지 않는다”며 세금청구액에 이의를 제기하면 오히려 비웃음을 사는 상황이다.
그의 행동은 의사세계에서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뭐 그렇게 혼자 잘났느냐는 식이다. 그리고 낙태시술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느냐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그는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자신처럼 낙태시술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래저래 손해가 많다.

“사실 소파수술을 좋아서 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없을 거예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강 원장은 의사들 편을 들면서도 낙태수술을 하러 온 환자가 있으면 먼저 와서 기다리는 다른 환자를 제치고 수술하는 의사도 있다며 의사들의 양심과 생명·윤리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꼬집었다.

정부의 방관자세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한해 150만건 이상의 낙태가 자행되고 있는데도 불법인 낙태시술을 하다 형사입건된 의사가 있는냐고 그는 반문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지만 낙태문제는 개인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생명·존중의식을 국민저변에 꾸준히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연적인 가족계획 문제와 관련해서도 좀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부부생활의 현실적인 여건을 너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병원은 이제 개업 10년이 넘어 낙태시술을 하지않는 병원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있다. 예전처럼 병원에서 “낙태시술을 안한다.” “왜 안해주느냐”며 환자와 간호사가 실랑이 하는 모습은 거의 없다.

대신 그의 전공인 부인과 환자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지만 올들어 병원운영이 부쩍 힘들어졌다. 그래도 그의 행동은 흔들림이 없다. 지난해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난 큰 딸이 “아빠 제발 불쌍한 아기들을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릴수록 그의 행동에 신념을 갖는다. 부인 또한 정말 병원운영을 못할 지경이라면 규모를 줄이거나 문닫을 각오를 하자며 격려를 해주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돈보다 생명을 택한 의사가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풍토가 아니다.정말 낙태시술을 안하는 의사가 존중받는 사회가 될 때 생명 존중분위기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이연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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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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