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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평화-5·18광주 민중항쟁 20돌 현지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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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중항쟁 20주년을 맞아찾은 광주시 외곽 운정동의 5·18 신묘역. 전통가옥 지붕모양의 민주의 문 과 추념문 을 지나 넓은 원형의 광장을 가로지르면
생명을 감싸 쥔 손모양의 5·18 민중항쟁 추모탑 이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아있고 그
뒤로 5·18 영령 295기의 무덤이 언덕 위를 가지런하게 채우고 있다.
무덤들 중에는 벌써 가족이나 친구들이 왔다갔는지 아직 싱싱해 보이는 국화다발들이 놓여 있고 봄나들이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무덤을 돌며 비석에 새겨진 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입으로 되뇌어본다. 또 어린 자녀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설명해주는 부모들 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그때는 정말 말도 못해라. 시상에(세상에) 온 천지에 피가 없는 곳이 없었응께.” 당시 광주에 살고 있었다는 한 할머니는 20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듯 안타까운 시선으로 한참동안 무덤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망월동 5·18 신묘역은 지난 1997년 5·18 희생자 묘역을 민주성지로 가꾸자는 움직임에 따 라 광주광역시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구묘역 앞쪽 5만여평의 부지 위에 조성했다. 그리고
기존 망월동 공원묘지 입구의 제3묘원(구 묘역)에 잠들어있던 이들을 이곳으로 이장했다.
그러나 아직도 구묘역에는 5기의 묘가 이장되지 않은 채 다른 민주화 운동 관련자 34명의
영령들과 함께 그곳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최근 하루 평균 3500여명의 참배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20주년을 맞아 광주·전남 지역 뿐만 아니라 멀리 서울 경상도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관리사무소측 은 전했다. 주차장에 가득 찬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손에 흰색 국화를 든 일행이 무덤을 찾았다. 5월 그날이 다가오자 5·18 부상자회 회원
8명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간 동료들을 찾아온 것이다. 총상이나 부상을 입고 국군광주통 합병원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은 동료의 무덤에 흰색 국화를 바치고 비석을 쓰다듬 으며 또다시 눈시울을 적시지만 이내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짓는 다.
그날의 상처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돼버린 임성욱(47·안젤로)씨는 “5·18도 20년이 니까 이제 성년이 됐다”며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받 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정신이 정말 역사 속에서 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 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나란히 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동료들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묵념을 드 린 후 저녁에는 한 동료의 집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며 묘지를 내려갔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묘지 광장 왼편 민주의 문 지하에 마련된 사진자료 전시실 입구 정면에 걸린 이 글귀가 찾 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서자 좌우 벽면으로 80년 봄의 참상을 알려주는 사진들 이 즐비하게 그날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위군중과 계엄군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 넋나간 부모들과 어린 자녀
사진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의 눈이 찌푸려진다. 어떤 어린이들은 보자마자 눈길을 돌려버리 거나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는다. 엄마의 설명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지만 이내 바지를 붙들 고 무섭다며 엄마를 다른 곳으로 이끈다.
“아빠와 이전 한번 온 적이 있는데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라고 얘기 들었어요.
아빠 친구도 이곳에 묻혀있대요.”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나온 김태영(9·광주 문화초등학교 2학년)군은 하지만 이런 사진들을
보는 것이 무섭기만 하다고 말했다.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은 이곳에 누워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자신들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일들이 어떤 일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 들이다. 단지 선생님의 말씀을 그런가 보다 하며 받아넘기는 눈치다.

영령들의 영정과 위해가 봉안된 유영봉안소.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이 맑은 눈망울을 굴 리며 숨죽여 사진들을 쳐다본다. 약간은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약간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 로 한참을 바라보는 어린이들도 눈에 띈다.
원형광장에서는 곤색과 흰색의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 추모탑 앞에서
영령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묵념을 드린다. 푸른 무덤과 이들의 하얀 교복이 5월 하늘아래
곱다.
원형의 광장을 가로질러 민주의 문을 지나 신묘역 후문쪽으로 향했다. 길을 건너자 원래의
5·18 묘역인 망월동 제3묘원(구 묘역)이다. 예전의 묘지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공원묘지를 찾는 이들이 가끔씩 이곳에 발길을 멈춰 돌아보곤 한다. 무덤 앞에 놓인 이슬과
비와 태양에 빛바랜 사진들 속에는 김남주 시인 이한열 박승희 강경대 열사 등 낯익은 이 들의 얼굴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5·18 민주화정신이 계승되고 있는 자 리였다.
“신묘역의 크기에 압도됩니다. 크기나 웅장함보다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이어준 이후 우리 나라의 민주화와 그 정신에 초점이 맞춰졌어야 하는데….”
신묘역에서 만난 한 40대의 참배객이 던졌던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한 것이었다. 신묘역에서 는 5·18의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관광객들과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5·18 신묘역과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어 고요 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구묘역. 두 묘지는 같은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대조적인 분위 기를 내뿜고 있다.
구묘역을 등지고 멀리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임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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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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