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독재에 저항했던 광주의 민중들. 5·18은 이후 부도덕한 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운동을 합법화시키며 오늘을 만든 한국현대사의 크나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전남대 5·18 연구소 박병기 상임연구원은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의 진정한 의미는 그
때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가 또는 5·18을 광주라는 지역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
라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과 신념을 희생으로 지킨 바로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정신의 보편화 전국화가 이번 20주년을 계기로 마련돼야 할 것이며 이번
20주년 행사 안에서도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광주의 일은 잊혀져 가지만 묘지의 영령들과 그때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라 자유 민주 정의 인권 이라
는 5·18 광주민중항쟁의 숭고한 정신이 모든 이들의 삶 속에 살아숨쉬는 것이다.
그러나 묘지나 행사를 준비하는 곳의 분위기와는 달리 학생들과 계엄군간의 첫 충돌로 항쟁
의 도화선이 됐던 전남대 학생들과 금남로를 지나는 시민들의 분위기는 사뭇 차갑게 느껴졌
다.
“5·18이요? 별로 아는 게 없는데요. 잘 모르고 지내거나 잊혀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학생들 대부분은 그때의 일을 아주 먼 역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피를 흘
리며 지키고 만들어간 민주화를 위한 노력들이 지금의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이런 것도 잘 모르고 있냐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라
는 한 여학생의 말이 단순한 투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5·18의 정신을 알리고 가르치는 일은 하지않은 채 묘역을 커다랗게 조성하는 등 외형 가
꾸기에만 너무 몰두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다.【임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