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은 로마 교황청과 한국 가톨릭 교회가 동시에 지내는 과학자들의 대희년 의 날이다. 그간 가톨릭 교회가 진보적인 과학자들과 갈등관계를 빚어온 것처럼 비춰진 사례도 없지않지만 가톨릭 교회의 복음 선교가 과학기술의 발달에 기여해온 공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과학자들의 대희년을 맞아 가톨릭 교회가 과학발전에 기여해 온 측면을 특집으로 조명한다. 편집자
15세기 중반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납활자 주조 성공 이를 조판해서 포도압착기를 응용해 만든 평압식 인쇄기로 성서를 인쇄한다.
이것이 서구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볼록판 인쇄이자 금속활자다. 그런데 구텐베르크의 현대식 인쇄법 출현이 가톨릭과 깊은 관련가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독일 마인츠에서 태어난 구텐베르크는 대주교구의 조폐국에서 일하던 아버지 덕분에 금속세공기술을 익혔고 1448년 요한 푸스트라는 채권자의 지원을 받아 활자를 제작했으나 빚 때문에 그간 만들었던 성서인쇄본과 활자를 모두 빼앗긴다. 이를 빼앗아간 채권단들은 결국 첫 작품으로 성서를 찍어냈고 이것이 구텐베르크 성서다.
일반적으로 현대에 들어 교회는 과학의 발전을 저해했다 는 등식이 보편화돼 있지만 사실 교회와 과학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중세 기술의 발달에서 가톨릭의 기여는 결정적이었으며 이같은 양상은 중세 수도원 수사들의 활동에서 아주 확연하게 드러난다.
중세기술은 무엇보다도 11세기 동력과 농업기술에서 혁신적 발전을 기록한다. 일례로 기도를 비롯해 성무활동을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수행하려 했던 사제들은 14세기에 기계식 시계 를 제작한다. 또 프랑스 샬트르의 한 사제는 이에 앞서 8세기에 고대 물시계를 대체하는 모래시계를 제작하는데 초기에는 말린 모래 후에는 포도주에 9번 끓인 검고 고운 대리석 가루를 유리 용기에 밀봉하여 만들었다.
중세 유럽 최초의 시계는 자명종이다.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던 시계는 깨우는 시계(horologia excitatoria) 로 시계지기의 방에 설치됐다. 시계 종이 울리면 한 수도자가 잠을 깨고 그가 다른 수도자들을 기도실로 모이게 했다. 그리고 나서 또 수도원의 탑으로 올라가 그곳에 설치된 종을 쳐서 모두에게 시각을 알렸다. 그 뒤 수도원의 탑에는 망치가 자동적으로 종을 쳐서 성무일도(성직자 수도자들이 의무적으로 바치는 공적인 기도) 시각을 알리는 탑시계가 걸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민족의 침략으로 혼란을 거듭했던 중세기에 이미 대학을 설립해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가톨릭 교회는 과학 발달의 수호자로서 대학과 수도원의 교육활동을 통해 그리고 과학자들에 대한 직접적 후원을 통해 과학 발전에 공헌했다. 또 교회의 직접적 필요에 따른 것이긴 했지만 천문 관측과 음악 건축기술 등의 혁신을 이루었고 포도의 대량재배 포도주 대량 제조 등을 통한 식생활 개선 달력 제작을 위한 천문학 연구 등의 성과도 거두었다.
성 베네딕도회 수사들은 또 전쟁과 혼란의 와중에서 의학분야의 업적을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특히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통해 고대 그리스 의학자들인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에 대해 탐구하고 의학을 연구했다. 또 로마에서는 교황청립 의료학교를 설립 교황의 보호아래 해부학 실험을 통한 혈액순환의 발견 박테리아 등 미생물 발견 의 업적을 남겼다.
한편으로 스콜라 철학자와 사제들은 자력의 발견을 통한 전기이론 구상 질료 형상설을 통한 물질 구조 설명 금속 변성 개념의 수용 등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근대 과학의 태두라 할 코페르니쿠스 조차도 성당 옥상에 천문대를 만들어 천체를 관측하고 태양중심설을 제기했으며 그 책의 서문에서 이를 교황에게 바친다고 했다. 가톨릭은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처음으로 지동설을 비판한 것은 루터였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황청과 지속적인 접촉을 가지면서 지동설을 저술했고 이에 대한 교황청의 간접적 지원은 최근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다.
가톨릭 신앙과 과학이 적대관계를 갖고 있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결정적 계기는 1633년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이다. 가톨릭 교회가 진보적 과학자를 탄압한 전형적 사례로 거론돼 온 갈릴레오 재판 은 당시 교황 우르바노 8세와 갈릴레오의 개인적 갈등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비판하면 곧 교회를 반대하는 것으로 여긴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의 반발 프로테스탄트와의 정치적 문제 등 복잡한 배경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렇지만 교회는 일찍이 1820년에 그 잘못을 시인한 바 있으며 이 사건 이외에 가톨릭 교회가 직접적으로 과학자들을 탄압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18세기 후반 다윈이 진화론 을 주장하면서 가톨릭과 과학이 아주 극적인 갈등관계를 빚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개신교 과학자들의 비판 사례가 더 많다.
현대에 들어 가톨릭 교회는 교황청 과학원을 통해 신앙과 과학의 불신을 불식시켜 나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16∼17세기 천동설-태양중심설 논쟁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오류를 “솔직하게 인정한” 바 있다. 또 예수회가 운영하는 교황청 직속 바티칸 천문대는 우주물리학 발전에 기여하는 업적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 신앙과 과학은 근본적으로 모순 관계일 수 없고 실제로 모순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와 현대과학계 철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마디로 신앙과 과학은 진리 탐구에 있어서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또 마땅히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폐막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탐구자라 불리는 그대(과학자)들의 친구요 동료이다.”【오세택 기자】